옹윤례 소설가

동생이 양평으로 이사를 온다고 한다. 가까이 온다하니 마냥 좋기만 하다. 그러다가 부모님 가까이 살면서 이것저것 챙기던 동생이 떠나면 서운해 할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자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이참에 부모님도 양평으로 이사를 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수고비를 줄 테니 초등학생인 세 아이의 숙제를 좀 봐달라고 했다. 가끔 대학생이 된 두 아이들을 보며 못해준 것들이 생각날 때가 있어서 다시 아이를 키우면 더 잘 키울 텐데 하는 아쉬움과 이미 곁을 떠난 느낌이 들어 허전할 때가 있다. 그런데 동생 말을 들으니 갑자기정신이 번쩍 들며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빈 둥지 증후군이 사라져버린다.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리며 긴긴 육아의 터널을 지나왔던가.

양평에 산 지 벌써 4년째다. 딱 1년만 살면서 고3 딸애가 졸업할 무렵 책 한권 써서 돌아가야지 하고 왔는데. 선녀는 나무꾼이 날개옷을 숨겨 떠나지 못했는데 나는 왜 양평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도시의 삶에 길들여진 나에게 양평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어쩔 때는 거꾸로도 흐르고 어쩔 땐 멈추기도 한다. 처음 일 년은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소중했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파리에 막 도착한 말테처럼 기록하고 관찰했다. 만나는 사람들의 삶이 다 귀하고 신기했다.

일 년이 지나고 딸애가 졸업하자 결혼안식년이라는 명목으로 양평의 삶을 유예시켰다. 몸과 마음에 자유로움을 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나를 벗어나면 다른 것에 얽매여버렸다. 처음엔 하루 종일 책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더 이상 책이 글자로 보이지 않고 숫자로 읽히는 감옥에 갇혀 버렸다. 그곳을 탈출하자 다시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보처럼 소중한 휴가를 그렇게 낭비해버리고 말았다.

3년째, 여행도 끝나고 휴가도 끝났지만 텅 빈집에 돌아가기 싫었다. 시계바늘이 힘겨운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상실감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동침하고 있던 슬픔과 한바탕 뒹굴어야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걷고 또 걷고, 춤을 추고 또 추었다. 어차피 인생은 연극인 것을 한바탕 울고 웃으며 춤을 추고나면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고 아물어갔다. 위로하며 위로받으며 한해가 지나갔다.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다.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산책길에 말라버린 장미꽃 한 송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 전에 돌아온 고니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대는지 귀가 따갑다.

첫겨울엔 고니의 울음소리 정체를 모르고 늪에서 밤마다 귀신들이 내는 소리인줄 알고 무서워했다. 다음해엔 춤추는 하얀 고니의 모습에 반해 고니가 옮겨 다니는 강이나 늪, 갈대숲으로 따라다녔다. 지금은 고니의 울음소리가 운동회 하는 것처럼 씩씩하게 들려 저절로 즐거워진다. 적어도 2월까지는 즐거운 합창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아무튼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조카애들 세 명의 숙제를 봐주자니 그동안 누린 자유와 여유로움을 저당 잡혀야 될 거 같고, 바쁜 동생을 모른 체 하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까.

동생과 조카애들을 데리고 양평의 이곳저곳을 놀러 다닐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 우선 고니부터 보여주고 양평장에 데려가 맛난 통닭을 사줘야지. 리버마켓에 가서 군고구마 먹으며 신나게 연도 날려보고 강물이 얼면 썰매도 타야지.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매화꽃향기 날리는 두물머리를 달리고, 여름이면 연꽃 피는 세미원 평상에 앉아 별도 찾아보고, 가을이면 용문사 은행나무도 보러가야지. 이렇게 놀려면 숙제를 빨리 끝내버리자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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