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례 사계절 정원 이야기 - 화초 정원

누군가 나에게 정원에 꽃나무 한 가지를 심으라 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수입 목수국을 집어들 것이다. 나름 식물을 선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게 있는데 목수국은 노지 월동능력이 탁월하며 개화기간이 장장 3개월 정도 되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별다른 병해충이 없으며 수국종류이긴 해도 물시중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니 번거로운 걸 질색하는 게으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몹시 게으른 나 같은 사람에게 간택당하지 않을 수 없는 나무가 목수국이다.

활짝 핀 목수국 라임라이트(Hydrangea paniculta Lime light). 개화 시기는 7월부터 된서리 내리기 전까지며 키는 2m까지 자란다.

조선시대 궁중의 화초를 돌보는 장원서(掌苑署)라는 관청이 있었다. 장원서는 궁중의 과실과 화초의 관리를 맡은 관청으로 별재가 장원서를 관장했는데, 그 아래로는 전문직인 중인이 화초관리를 담당했을 것이다. 아마 전생의 내 삶이 장원서의 중인정도의 신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연산군은 왜철쭉과 명에서 건너온 목베고니아와 기이한 화초에 탐닉했다고 한다. 연산군이 아니더라도 상품경제가 발달한 18세기 때에는 선비들 사이에서 화초를 키우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한다. 재력이 밑받침되는 이들은 소철을 키웠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한 소철은 원산지가 아열대성이다 보니 특별 제작한 온실에서 키우며 많은 공력을 쏟았다고 한다. 양반들이 사철 푸른 이파리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조선에서 구할 수 없는 희소성을 따져 명품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소철에 꽂힌 양반들이 소철의 수정방법을 알았더라면 외설스럽다고 마다했을지 궁금하다.

지구상에 소철이 등장한 시기는 공룡이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원시 지구가 온통 축축한 물기로 뒤덮여 있을 때였다고 한다. 소철이 암수 딴 그루이다 보니 수정을 위해서는 기동성이 필요했으리라. 당시 지구상에는 곤충이 출현하기 전이니, 수나무의 꽃가루는 인간의 정자처럼 머리와 꼬리를 달고 물속을 헤엄쳐 암술머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꾀했다고 한다. 지금도 소철의 수 꽃가루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는데 과히 화석나무로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이든 돈이든 뭐라도 투자해야지만 제대로 된 취미생활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은 인간이 중뿔나게 잘난 척, 있는 척 하는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나를 진단하건데 그런 징후가 엿보인다.

나는 수입 목수국 여러 품종을 가지고 있다. 다행이라면 삽목이 잘 돼 단 돈 몇 천원으로도 3개월 이상의 꽃을 볼 수 있는 목수국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옛날 소철을 키우며 자랑했을 양반님네가 부럽지 않은 이유다. 그들의 명품 화초 사랑에 뒤지지 않을 수입 목수국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올 한 해 삽목 성공과 공중 취목 성공에 환호성을 질렀다. 새끼손가락을 들어 식물 좋아하는 사람 여기 여기 모여라, 정원을 가꾸고 혼잣말로 식물과 대화하며 교감하는 듯한 이상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회적 인간임을 고백한다. 

목수국 공중 취목(줄기를 수태 등으로 감아 뿌리가 나게 한 후 잘라 내어 번식시키는 방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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