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도쿄 연설 100주년 국제학술심포지엄 개최

몽양 여운형 선생은 1918년 11월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을 결성하여 우사 김규식 선생을 파리평화회의 대표로 파견하는 한편, 동지들을 일본 도쿄와 만주 등지를 거쳐 국내로 보내고 자신은 만주 창춘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 가서 3.1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3.1운동 이후에도 그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데 숨은 주역의 역할을 했다.

도쿄 방문 당시 몽양 여운형 선생.

일본 정부는 이러한 그를 독립운동 대열에서 이탈시켜 친일 자치주의자로 회유하고자 일본으로 초청했다. 하지만 여운형 선생은 이를 역이용해 적의 심장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다. 일본 정부 최고 관료들과 만나 담판 외교를 펼친 몽양선생은 1919년 11월 27일 도쿄제국호텔에서 대규모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알리고 독립운동의 노선과 독립 이후 국가건설의 방향까지 천명했다.

이 연설로 인해 일본 정치, 사회는 일대 파란이 일어나 그를 초청했던 수상 하라 다카시와 그 내각은 청문회를 거쳐 결국 총사퇴하게 되었다. 때문에 사퇴한 하라 내각의 별명이 ‘여운형 내각’으로 불렸다고 한다.

34세의 식민지 청년 망명독립운동가가 제국 정부의 초청으로 본국을 방문하여 담판 외교를 펼치고 기자회견을 통해 당당히 독립의지를 밝힌 것은 세계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사에 있어서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1918년 말 몽양 여운형 선생과 신한청년당 동지들의 활동이 3·1운동 발단의 중심이 되었다면, 1919년 말 그의 일본 방문 외교 활동과 도쿄제국호텔 연설은 그야 말로 3·1운동의 대단원을 장식한 우리 독립운동사의 일대 쾌거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1919년 11월 도쿄 방문 일행. 좌로부터 최근우, 여운형, 신상완, 장덕수.

100년 전 일본 도쿄제국호텔에서 있었던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의 연설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지난 27일 오후 1시부터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이부영)가 주최하고 몽양여운형기념관(관장 윤경로)이 주관, 양평군이 후원했다.

‘3·1운동의 대단원, 몽양 여운형 도쿄제국호텔 연설’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은 몽양여운형기념관 장원석 학예실장의 사회로 일본 도쿄대학교 총합문화연구과 미쓰이 다카시 교수가 ‘3·1운동 이후 일본의 식민지 통치정책 변화와 여운형 초청’,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윤대원 연구원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초기 동향과 여운형 일본 방문’, 독립기념관 이준식 관장이 ‘여운형 일본 방문과 도쿄제국호텔 연설의 역사적 의의’, 일본 히토츠바시대학교 한국학연구센터 이규수 교수가 ‘일본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여운형의 일본 방문’을 주제로 발표했다.

종합토론은 몽양여운형기념관 윤경로 관장(전 한성대 총장)이 좌장을 맡아 홍종욱(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교수), 한시준(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초빙교수), 전상숙(광운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서민교(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책임연구원)가 참가해 발표자들과 함께 토론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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