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게 내가 의심하지 않고 믿는 인생 불변의 법칙이다. 내가 안 주었으면 못 받는 거고 안 했으면 그만큼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딘가 야박하고 씁쓸하다면 뭐라도 흙에다 심어보자. 내가 그만큼 공을 들인 것 같지 않은데, 미안하게 많이 주네. 난 별로 하지 않았는데도 식물은 살아남아 강한 생명력과 꽃을 선사하는구나 싶어 뭉클할 때가 있다.

알리움 (Allium)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한 속

.*글래디에이터:양평 기준 개화시기 4월 중순. 꽃볼이 작고 엉성하나 제일 빠른 개화시기를 자랑함.

*글로브마스터:5월 초순 꽃대를 올리며 10일쯤 만개 함. 꽃의 크기가 크고 꽃대가 튼실함.

*기간티움: 5월 10일쯤 꽃대를 올리며 그 이후 만개. 꽃의 크기는 글로브마스터보다 작으나 꽃 조직이 단단함. 꽃대를 1m정도 올리나 쓰러지지는 않음.

다른 건 몰라도 씨앗을 뿌리고 무언가를 심고 나서 얻는 기쁨과 수확의 감사함은 내가 애쓴 거의 몇 배 이상의 가치를 준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내게 가르친다. 내가 들인 수고는 코딱지 만큼인데 따따블로 받으니 겸손해지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게 만드는 자연은 어리숙한 나같은 인간에게는 참스승이나 다름없다.

나는 겨울이 싫었다. 겨울이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운 건 그 옛날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불러왔을 겨울 그 어느 날의 단편적이지만 강렬한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빚쟁이들이 들이닥치던 때가 겨울이었고 집안이 거의 풍비박산으로 몰리던 무렵 빚쟁이들 성화에 어린 나는 방에서 쫓겨 나 양지바른 굴뚝모탱이에서 벌벌 떨며 기도를 올렸다. 콩가루같은 내 집안을 어떻게 좀 해달라고. 내 기도는 통하지 않았고 대신 신은 평생 따라다니는 편두통을 혹처럼 붙여주셨다. 가족 구성원 누구를 원망하기에는 면목이 없을 정도로 나는 내 소설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었으니 그것으로 퉁 치긴 했지만 나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나 스스로 아플 채비를 서두르곤 했다.

나도 모르겠다. 으슬으슬 한기가 들리듯이 기분이 착 가라앉으며 만사가 귀찮고 뭘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게 단지 의지박약의 산물인지는. 손발이 찬 나를 보고 생기다 말아서 그런 거라고 타박을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호전되지 않았다.

유년의 시절, 어둡고 긴 겨울을 보낸 나는 마늘밭으로 달려가 파릇하게 올라오는 마늘 싹을 쳐다보고는 했다. 그냥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걸로도 좋았다. 그 어린 아이가 마늘 싹을 보고 안도하며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처연함을 이제서 알겠다. 살았구나, 장하게 살아서 파릇하게 싹을 내미는구나. 기특하구나. 어린 내가 마늘밭에서 어떻게라도 희망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나는 절대로 의지박약한 인간이 아니었구나.

나는 올해 양파만한 알리움 구근을 심었다. 대개 한 쪽을 심으면 수확할 무렵에는 한 쪽이 더 붙어 두 쪽이 된다. 4월말부터 장마 전까지 꽃대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채종을 하려고 한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 꽃을 봤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꽃대를 자르지 않으면 구근이 작아져 다음 해 꽃을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둥근 공안에 씨가 맺히면 어마어마하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알리움은 채종을 한다 해도 꽃을 보기까지는 4-5년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그냥 구근을 키우고 덤으로 붙은 자구를 키우는 게 경제성을 따지더라도 이문이다.

땅이 깡깡 얼기 전에만 심으면 알리움은 땅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가 3월 초순 새순을 내밀고 위풍당당하게 이파리를 펼친다. 된서리가 내려앉아도 까딱하지 않는 맷집으로 추위를 견디며 버틴다. 그 기세가 마음에 든다. 어린 날 유독 마늘 밭에 마음을 뺏긴 이유와 같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나야 알리움은 꽃을 피운다. 혹독한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꽃 앞에서 징징대지 말자.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 이제 엄살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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