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정원 첫 번째 이야기

내가 루바브를 알게 된 건 타샤 튜더의 책에서다. 타샤 할머니는 3대째 내려오는 루바브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씨앗을 파는 해외 사이트에도 루바브를 가보로 내려오는 식물로 소개를 할 정도이니 대대로 물려주며 키우는 식물이긴 한가 보다.

애들 어렸을 적 읽어 주던 ‘꼬마정원’이라는 책에서는 루바브를 장군풀로 소개하고 있는데 장군풀이 루바브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영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식물에 대한 욕심과 호기심은 직접 심고 키워봐야지 끝장을 내는 내 이상한 성격과 적절하게 부합하곤 한다.

루바브(Rheum rhaponticum:식용대황) : 시베리아 남부 원산지의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 잎에는 유독성분이 있어 줄기만 베이킹과 디저트, 각종 요리에 사용.

루바브와의 인연도 씨앗 열 개로부터 시작되었다. 파종 첫 해에는 축축한 땅을 좋아하는 습성을 무시하고 거름기 하나 없는 메마른 땅에 심어 시난고난 고생을 시켰다. 두 해 째, 언 땅이 풀리자마자 붉은 잎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가히 압권이었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성장세가 빨랐다. 여러해살이가 대개가 그렇듯, 파종 두 해째 꽃대를 올리기 시작하는데 수확을 하기 위해서는 꽃대를 잘라야 하지만 나는 씨앗을 얻을 생각에 그냥 두었다. 소리쟁이 꽃자루와 흡사한 꽃이 피기 시작하는 데 언뜻 보기에도 씨앗 수 백 개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씨앗 나눔 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아뿔사, 씨앗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날개도 없는 것이 바람에 날아가는 게 아닌가. 서둘러 씨앗을 까불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쭉정이 씨앗이 바람에 죄 날아가고 남은 건 고작 스무 개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루바브는 잎에 독성이 있어 줄기만 활용한다. 줄기를 잘라 맛을 보니 새콤하니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이때까지는 ‘아 이래서 미국에서 루바브를 과일 취급하는구나’ 했다. ‘아니 이 신 것을 과일처럼 생으로 먹는다는 건가.’ 어쨌든 홍옥 사과의 새콤함을 떠올리며 침을 흘렸다. ‘아니면 샐러드에 넣어 먹나?’ 하마터면 상상 속에서 루바브를 먹는 미국사람에 대한 연구까지 할 뻔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루바브를 과일로 분류한 건, 대공황 때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입할 때 낮은 관세를 적용받기 위해 과일 취급을 했다는데 괜한 상상을 했다.

줄기를 몇 개 남겨두고 수확을 했건만 한여름이 오기 전 루바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년에 돋아난다면 올해보다 두 배 이상은 커질 테니 볼만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아낌없이 여러 종류의 잼을 만들 것이고, 루바브만 넣은 순수한 루바브 잼도 만들어 맛 볼 것이다. 그리고 파이나 루바브 설탕조림을 해서 여기저기 나눠주고 먹어보리라.

사실 루바브의 진가는 설탕의 대중화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신맛이 나는 루바브만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맛은 단맛과 어우러졌을 때 시너지를 내게 돼 상큼함과 향긋한 향까지 얻을 수 있으니, 사랑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 프로에서 네덜란드인이 사슴고기에 루바브를 넣고 조리는 것을 보기는 봤다.

이제야 알았다. 식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은 게 아니라, 식탐이 많은 거였구나. 식물에 대한 내 호기심이 결국 먹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구나. 맙소사, 갱년기라 안 먹어도 뱃살이 출렁거린다는 핑계를 대지 말지어다. 어떻게 하면 심어서 먹을까, 키워서 먹을까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은가.

크게 보면 지구는 거대한 식물원과 같다고 한다. 안마당과 바깥마당에 먹을 것을 키우고, 더 잘 키워 더 잘 먹을 고민을 하지만 어쨌든 나는 내 식물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만하면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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