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의 이럴 땐 이런 책>

Q. 꽤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인데 요즘에 사이가 멀어졌어요. 그 친구한테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 말을 다 들어줬거든요. 저도 그렇겠지만 힘들 때는 사리분별이 잘 안됩니다. 말도 안통하고 한 이야기를 또 하거나 각색해서 제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참 좋은 친구였는데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힘들텐데 그 친구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도 힘들어져서 제가 멀리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도 서운할텐데요. 어떻게 해야 할지…

A. 어렵고 어렵습니다. 많은 이들이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온갖 이야기를 만듭니다. 누구 탓을 하거나 혹은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기도합니다. 그 탓과 문제에는 꼭 스토리가 따라옵니다. 우리가 보통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어떤 경험은 기억에 남고 어떤 것은 아무리 애써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억 속 재료들을 모아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누구는 이런 이야기에 진심을 붙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기만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추천하는 책 안에는 이것과 관련된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에 관한 여러 가치관, 대응 방식, 태도를 가능한 한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자기 서사(self-narrative)를 만든다. 우리가 과거 인생을 돌아보며 구축한 가상의(fictional) 자아는 그 이야기의 일관성,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래의 우리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남들이 이해할 수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인생에 큰 변곡점이 있을 때, 어렵고 슬프고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이 있을 때 쓰는 자기 서사는 ‘내 안에 또 다른 나’ 즉 타자를 저자로 불러옵니다. 인생 전체를 뒤집어서 자신이 거부했던 나를 데려다가 이야기를 짓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을 납득하기 위해 그것을 해명하는 이야기(신화) 또는 이론(기상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역사학, 사회학 등)을 필요로 했다. 우리 개개인도 자기 인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론을 만든다.”

아마 질문하신 분의 친구분도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중일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독자 중 한사람은 질문하신 분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 책의 저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실격당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친구분의 이야기가 이치에 맞지 않고 왜곡되고 거짓되어 보여도 그가 다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어떨까요? 너무 무리한 제안일 수도 있지만 두 분이 같이 이야기를 쓰던 때를 기억해보세요.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책을 한 번 읽어보세요. 김원영이 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입니다.

저자 김원영의 인생은 다채롭습니다.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탑니다. 열다섯 살까지 집과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와 동대학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고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연극배우로도 활동합니다. 한편에는 장애, 질병, 가난을 이유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서울대 출신의 주류라고 불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이 사회 양극단의 스토리를 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합니다.

“‘잘못된 삶’이라고 규정된 자기 조건의 일부를 ‘스타일’의 토대로 삼거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시도는 결국 ‘정신승리’가 아닐까?” 저자는 사회적으로 열등하고 잘못되었다고 부르는 조건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에 대해 답을 내립니다.

삶을 수용하는 방법, 언제든 잘못되었거나 잘못될 수 있는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 특히,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 많거나 혹은 세상에 화가 많은 분들이 읽는다면 삶을 수용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내 안의 오만과 편견을 버리는 데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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