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 함께 틔우는 놀이터’ 프로젝트

아이들은 자신들의 놀이경험을 통해 놀이기구의 모습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아이들에게 직접 놀이터를 만들라고 하면 어떤 모습일까?

지난 12일 오후 3시, 옥천면 옥천3리 나대지(448-1)에 모인 15명의 옥천초등학교 학생들이 완성해가는 놀이터는 ‘사다리집’, ‘수레로 끄는 놀이터’, ‘화덕’, ‘미끄럼틀’ 등으로 모습을 갖춰갔다. 여섯 차례에 걸쳐 함께 만나 놀며 쌓은 일가견으로 만든 놀이터는 판에 박힌 놀이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놀이공동체 빈둥(대표 최형욱)’이 주최‧주관하고 경기문화재단‧경기도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2019 보이는마을 조성 공모지원사업’으로 추진됐다. 옥천주민이자 설치미술가인 최형욱 대표(37)와 고연주(예술교육기획자)‧전흥렬(현대무용가)‧민수광(문화기획자)‧김중순(사회적기업 활동가)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옥천초등학교 학부모‧학생 25명이 9월 21일~10월 12일 6차에 걸쳐 ‘함께 틔우는 놀이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지난달 21일과 28일 한화리조트 양평에서 현대무용가와 예술교육기획자의 주도로 부모와 아이가 몸으로 교감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함께 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험 놀이터를 설계하는 것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후 인근 고물상을 방문해 놀이터 만들기에 쓰일 재료들을 아이들이 직접 골랐고, 4~6차는 옥천리 나대지에서 모험놀이터 만들기를 진행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마을 안에서 자치조직을 만들어 금요일마다 아이들이 만나 놀면서 자율적으로 실험하고 탐구한 점이 독특하다.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고, 놀이터를 만들어가는 주도성이 생겼다.

김중순씨는 “열린 결말의 설치예술을 만드는 작업인데 여러 곳에서 프로그램을 해봤지만 놀이기구가 3층 높이까지 올라간 건 처음”이라며 “모험적 놀이(adventure play)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연장을 얼마나 잘 사용할 수 있는지, 놀이기구가 어떻게 위험할 수 있는지 인지하며 진행한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미끄럼틀 주변에서 못을 박고 있는 유제민(옥천초3)에게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바닥이 들쑥날쑥해서 목을 박아 평평하게 만들고 있다. 망치질이 힘들지만 배운 대로 하면 된다”고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최형욱 빈둥 대표는 “시민참여형 놀이터라 해도 아이들이나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뿐 결국 전문가나 전문업체가 결정해 놀이터를 만드는 게 대부분인데 이번 프로젝트는 아이들이 폐허(나대지)에서 놀면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놀이터를 만들었다”며 “5명의 예술가들이 촉매자로서 제안하고, 퍼실리테이터로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따라가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슬라이딩을 위해 토관을 갖다 줬더니 안에 들어가서 굴리는 등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예술가로서도 새롭게 발견하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송나연(옥천초3)‧송소진(옥천초1) 자매가 ‘사다리집’이라 이름 붙인 놀이기구. 앉을 수 있고 따듯하며 그늘이 있어 좋다고 소개했다.

박지현(48) 학부모는 “옥천에 단독주택이 많다보니 아이들이 놀 만한 공공놀이터가 없다. 휴일에는 학교놀이터마저 개방되지 않고, 옥천레포츠공원에도 그네만 2대 있는 정도”라며 “아이들이 금요일마다 만나 놀았는데 어제도 밤 10시까지 놀았을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놀이터를 완성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며 입을 모았다. 나연이 엄마는 “여섯 번을 만나 놀았는데 항상 ‘지금까지 중에 오늘이 제일 재밌다’고 말한다. 놀다 온 날은 자면서도 웃으며 잠꼬대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아쉽게도 나대지를 빌려 만든 임시놀이터는 이달 말로 임대계약이 만료된다. 최 대표는 “놀이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학부모들 중심으로 자치조직이 꾸려졌다.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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