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얼마 전에 <며느리 사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목은 무척 자극적이었지만 시댁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것이 책의 주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책의 주제는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의무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는 뜻이었습니다. 남편도 비슷하겠죠? 아빠, 사위, 자식으로서 살아가니 말입니다. 제 경우를 대입해 봐도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네요. 궁금증이 더 생겼으니... 다른 책 있을까요?

A. 저도 그 책을 읽었습니다. 며느리 입장에서 쓴 도발적인 책이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 자식 다 키워 독립시키고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처럼 느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인문학 책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로마법 수업>입니다. 저자는 <라틴어 수업>에서 라틴어 고전에서 뽑은 격언으로 삶의 지혜를 알려주었던 한동일입니다. 그는 아주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바티칸 시티의 교회법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입니다.

이번 책 <로마법 수업>은 저자가 연세대학교의 야간 대학원 강의를 정리한 책입니다. 인생을 비춰볼 수 있는 두 번째 거울인 <로마법 수업>에는 법조문을 한 줄씩 설명하며 법의 탄생 배경과 고대 그리스를 계승해서 후마니타스를 화두로 가진 로마인의 감성과 이성적인 태도를 담았습니다.

질문의 내용을 적용시켜볼만한 내용도 첫 장에 나옵니다. 고대 로마인이 법정에 서면 처음 받는 질문, “당신은 자유인인가? 노예인가?”입니다. 그 누구의 엄마와 아빠, 그 누구의 아내와 남편, 그 누구의 딸과 아들, 그 누구의 직원과 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유로운 일인지 속박당하는 일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이들은 당신을 자유롭게 하나요? 아니면 구속하나요?”

엄마가 아이들을 돌보고 구속하고 통제하는 것 같지만 엄마는 모든 생활을 아이들에게 맞추기도 합니다. 즉 엄마의 주인은 아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엄마의 이런 마음을 모정과 희생이라는 말로 재구성해서 정당화합니다. 물론 현실입니다.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하고 엄마는 밥을 해야 하는 현실이지만 원래 엄마는 그냥 한 명의 사람입니다.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닌 인간 그 자체 ‘휴먼 네이처 human nature’입니다. 저자 한동일은 책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페니키아 출신의 법학자 울피아누스는 “시민법에서 노예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자연법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연법에선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연법이란 모든 시대와 장소에 적용되는 변치 않는 규범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거나 과거에 현실적으로 시행됐던 실정법 우위 개념입니다. 하지만 로마법은 엄연히 자연법이 아니라 실정법이었습니다. (...) 로마인들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된 법률은 ‘평등의 자연법’이 아닌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까지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실정법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나 회사나 학교에서 자연법이 아니라 실정법에 속해서 살고 있습니다. 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어진 조건에서 관습이나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상적인 것을 좋아하고 그것으로 가고 싶지만 현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규칙에 스스로를 얽매어 둡니다. 우리 생활은 법률용어로 실정법주의에 더 가깝습니다. 주어진 것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우리 처지는 삶이 아니라 바로 생활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유롭다면 누군가는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해내지 못함으로써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저녁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실정법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빠가 저녁을 준비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크면 자기 먹을 것을 직접 챙겨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빠와 아이들 모두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새로운 실정법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며느리 사표>는 실정법주의의 우리 생활을 바꾸기 위한 상징적인 문서입니다. 법정에 제출하는 준비서면이나 최후진술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책은 우리 실생활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생각의 기반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엄마 사표, 아빠 사표, 아내 사표, 남편 사표를 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성문법 즉 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실정법을 우리 생활에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합의하고 인식을 바꿔가는 작업, 이 과정을 로마법을 소개하는 한동일의 <로마법 수업>에서 배워보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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