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례 소설가의 사계절 정원이야기

<나물 정원 첫 번째 이야기>

이번 주부터 소설가 박병례 선생의 <사계절 정원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박 선생은 자택 정원을 나물 정원, 키친 정원, 화초 정원, 텃밭 정원으로 구분해 돌보고 있는데, 각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박병례 소설가는 1995년 실천문학으로 신인상으로 등단, 1997년 강원도민일보[김유정문학상]수상, 2001년 소설집 [쑥 캐는 불쟁이 딸]을 출간했습니다.

글을 쓰고 싶지만 더 재미있는 일이 많아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나는 넓은 정원이 있는 옆집을 무척이나 동경했다. 분꽃과 봉숭아만 알던 내게 생전 처음 보는 화초가 가득한 옆집 정원을 흘깃거리는 건 미지의 정원 탐험을 하는 두근거림을 선사하곤 했다.

우리 집에도 바깥마당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화초 대신 쌈 채소를 심었다. 상추꽃은 볼품없었고 아욱 꽃은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 꽃이라 우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해인가 키다리 꽃이 우리 집에 자리를 잡았다. 꽃나무를 심자고 노래를 하는 철딱서니 없는 딸내미를 위해 어머니가 어디서 얻어다 심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바라는 바는 아니었겠지만 키다리 꽃은 몇 년 키우면 바깥마당을 다 잡아먹을 기세로 영역을 넓혀갔다. 

그런데 키다리 꽃나무는 이름값을 한답시고 키가 멀대처럼 크더니 바람이 조금 세차게 불라치면 바닥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땅으로 곤두박질 친 꽃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먹지도 못할 것한테 땅을 뺏긴 것도 못마땅한데 품까지 들이며 키워야한다니 기가 막혔을지도 모르겠다. 그 꼴을 어머니가 봐 줄 리 없었다. 이태를 꾹꾹 참은 어머니의 거침없는 손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서 나는 칭얼댈 수가 없었다. 곱돌처럼 반들반들 윤이 나는 네모반듯한 타작마당을 유지하는 것이 농부로서의 자부심이고 긍지인데 사람 손을 타야 꽃을 달고 있는 화초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삼잎국화(키다리꽃나무)학명:Rudbeckia laciniata키: 1m50cm-2m개화시기:7-9월분류: 다년생 초화류번식: 씨앗을 맺지 않아 뿌리나누기나 뿌리삽목(근삽) 가능. 근삽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해야 성공률이 높다. 몇 번을 잘라서 먹어도 개화한다.

그 후 어언,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는 키다리 꽃나무가 삼잎국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삼잎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흔히 키다리 꽃나무라 불렀고 아랫녘에서는 나물거리로 사용했다고 한다. 시집 온 새댁이 나물 서른 가지를 모르면 온 식구가 굶어죽는다는 옛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살아왔을 어머니가 모를 리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귀화식물이란다. 먹을 수 있는 걸 어머니가 알았더라면 내 유년의 정원에서 키다리 꽃을 오래도록 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 평 반 남짓 되는 나물 정원에 꽃나물 김밥으로 유명세를 탄 삼잎국화인 키다리 꽃을 소환했다. 바람에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려 어머니의 심사를 거슬리게 했을 키다리 꽃나무 키를 줄이기 위해 서너 번 잘랐다. 김밥도 싸 먹고 비빔밥도 해 먹었으니 효용성을 따지자면 내 나물정원에서 키다리 꽃만 한 게 없으리라. 잎을 반죽에 갈아 넣어 발효 빵도 만들었으니 활용도 만점인 화초이자 나물로 나와는 상봉을 하게 됐던 것이다. 

수시로 잘라먹으면 꽃대가 올라오지 않는 부추처럼 꽃이 안 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삼잎국화는 당당히 꽃대를 올려 여름날을 환하게 밝혔다. 노란색이 단조로운 인상을 주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년초로 취급을 하는 버들마편초를 심었다. 보랏빛의 버들마편초는 노란색의 삼잎국화와는 보색대비를 이뤄 더할 나위 없는 환상의 짝이 되었다.

화초로 명명하는 것들 중 내 어린 날 유일하게 품어 본 키다리 꽃이여!

활용: 삶아서 나물 무침으로 국거리로 활용 가능. 시금치 대용으로 김밥에, 묵나물로도 활용. 향긋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매력적임. 제빵에 활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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