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를 3만 달러 국민소득을 가진 산업선진국으로 만든 원동력의 하나가 높은 교육열이었다. 이런 열망 덕에 세계에서 대학 진학률이 제일 높은 나라도 되었다. 그런데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사다리에 문제가 생겼음을 확인해주는 뉴스가 종종 보도된다. 온 국민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학교 신입생의 스펙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어떤 학생은 고교시절 자원봉사시간이 489시간이고, 109개의 상을 받았다고 한다. 109개의 상을 받았다면 연평균 36개의 상을 받은 셈이므로, 방학을 빼면 거의 매주 한 번 정도 상을 탄 셈이다. 그야말로 불가능해 보일정도의 놀라운 실적이다. 더욱이 최고 대학에 갈 정도로 고교시절 공부를 잘하면서 말이다.

필자가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에 교환교수를 하던 시절 한국교포들이 다니는 교회에 다녔다. 그곳 교인들도 자녀교육에 높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은 또래의 교회집사가 예배 후에 아들 진학상담을 하고 싶다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찰스라는 고3 아들이 졸업 후 대학 대신 소방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아들과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했다. “찰스가 미국에서 태어났나요?”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는 고교시절 틈만 나면 소방서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했으며, 이미 소방관 자격증까지 따놨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아이고, 잘은 모르지만 아드님은 우리 세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드님 원하는 대로 보내주면 어떨지요”라고 했다. 그는 필자의 반응에 매우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 답했다. “그래도 이 동네 명문인 워싱턴대는 가야 누군가 딸을 며느리로 주지 않겠어요?” 필자도 그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대만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들은 4년제 경찰대학이 없다. 소방관이나 경찰관은 대부분 고교 졸업생이 순경부터 시작한다.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되고 나서 파트타임으로 대학을 다니는 이들이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찰이 되면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생활은 중산층 이상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지역사회에서 경찰은 시민들의 신뢰도도 매우 높고 존경받는 좋은 직업이기도 하다. 당연히 만족도가 높다.

우리는 대부분 자식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아이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우리 세대를 살펴보면 틀리지 않는 사실이기도 하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대학입학경쟁이 수그러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는 현실은 많이 다르다. 서울에 있는 소수의 유명 대학을 가려는 경쟁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다.

대학졸업생들의 평가가 학교의 평판에 비례하고, 사회적 대우가 다르니 변화가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금수저라는 일부 계층의 자녀들은 능력이 부족해도 재력과 정보력으로 무장한 부모의 도움으로 좋은 대학에 쉽게 입학할 수 있는 채널이 많음을 확인했기에 시민들의 박탈감이 매우 크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서울대를 비롯한 국·공립대를 하나의 대학으로 통합하면 문제해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인구 4천만 명인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정부가 모두 10개 캠퍼스를 가진 주립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을 운영한다. 시너지 효과로 본교인 UC Berkeley와 분교인 UCLA는 세계적인 명문대이며, 무려 5개 캠퍼스가 세계 100대 대학으로 평가받는다. 지원하는 고교생들은 원서 한 장만 작성하고 원하는 캠퍼스를 체크만 해도 된다. 당연히 10개 캠퍼스 모두에 지원해도 된다. 우리나라도 국립대학만이라도 이런 시스템을 만든다면 대학별 줄 세우기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정의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의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정부는 대학교육의 정상화와 학벌사회 타파에 나서시라. 이런 혁신은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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