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정원 콘셉트 정립과 리뉴얼 필요

지난 6월 세미원이 경기도 지방정원 1호로 지정됐다. 광역단체장이 지정하는 지방정원은 2018년 3월 지정된 울산 태화강(지난 7월 국가정원으로 지정)이 있으며, 경기도에서는 세미원이 처음으로 경기도 지방정원의 지위를 획득했다.

본지는 지난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태화강국가정원과 순천만국가정원을 다녀왔다. 지난 17일 경기도 지방정원 지정 기념식을 가진 세미원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짚어보자는 취지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중심에 위치한 호수정원.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찰스 젱스가 순천의 지형과 물의 흐름을 살려 디자인했다.

국가정원이나 지방정원은 국가나 광역시가 예산을 지원하는 만큼 단순한 정원을 넘어선 가치를 지닌다. 순천만과 태화강 국가정원 두 곳 모두 ‘자연생태 보존과 환경 보호’라는 시대정신 속에서 탄생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지난 2015년 9월 우리나라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전남 순천만국가정원은 순천만 습지 보호를 명분으로 조성된 111만2000㎡ 규모의 정원이다.

1997년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습지의 개발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시민단체와 생태전문가들은 개발 반대와 습지 보호에 나섰고, 2006년 람사르협약(국제습지보호협약) 등록과 2009년 생태계 보존지구 지정을 이뤄냈다. 이후 순천시는 갈대숲과 개펄, 철새도래지인 순천만 연안습지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정원을 조성하고,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를 계기로 순천만은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고, 현재는 우리나라 정원문화 사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0~11일 이틀 동안 순천만국가정원 안내를 맡아준 순천토박이 김미정씨는 순천만국가공원 조성에 몇 년이 걸렸고 대규모 공사와 교통체증으로 인한 불편이 많았지만 시민들의 호응이 있어 국가정원 조성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민들의 습지보존에 대한 지지와 환경자원화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순천만국가정원에 이어 지난 7월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태화강국가정원은 울산광역시 태화강 일원에 83만5452㎡ 규모로 조성된 정원으로, 죽어가는 하천을 복원해 조성한 수변 생태 정원이다.

도심 속 수변공원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태화강국가정원.

태화강은 2000년대 중반까지 생활오수와 공장폐수로 가득한 죽음의 강이었다. 울산시민들과 환경단체, 기업체가 함께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자율적으로 펼친 결과 1급수 생명의 강으로 변모시켰고, 이후 지방정원을 조성해 자연과 주거공간이 어우러진 생태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지난 7월 27~28일 울산광역시를 방문해보니 시민들이 태화강에 갖고 있는 애정이 느껴졌다. 더운 날씨에도 태화강을 따라 산책하거나 십리대숲을 거니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고,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태화강국가정원에 대한 자랑을 잊지 않았다.

내친 김에 태화강국가정원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 회야호 생태습지를 찾아 생태환경교육을 체험했다. 최근 일 년에 두 달, 7~8월만 문을 여는 비밀의 정원으로 방송에 소개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회야호 생태습지는 6만평 규모의 인공습지에 부들, 연밭 등 수생식물을 식재해 수질을 정화한 후 울주군과 울산시 동구‧남구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곳으로, 세미원과 유사하다. 인솔자와 함께 회야댐으로 인해 수몰된 가옥, 야생동물의 흔적, 연밭을 둘러보며 생태교육과 수질정화 과정 등을 상세히 들었다. 세미원을 두 어번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한 참가자(울산시민)는 이곳은 세미원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잘 운영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세미원처럼 물 정화를 위해 수생식물을 식재한 회야호 생태습지. 일 년에 두 달만 생태교육을 위해 개방한다.

‘자연생태 보존과 환경 보호’ 이 점에서는 세미원 또한 다르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은 양평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 했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세미원 일대는 팔당댐 건설 이후 한강 상류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로 가득한 하천부지였다.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철망이 오히려 쓰레기를 가둬 수질악화의 원인이 됐다고 한다.

2002년 (사)우리문화가꾸기와 한강유역환경청이 공동개최한 ‘수생식물의 산업자원화 환경자원화’ 학술심포지엄을 계기로 수질 개선 효과가 뛰어난 연(蓮) 재배를 추진하게 됐고, 2004년 (사)우리문화가꾸기가 출자한 1억원과 경기도가 도지사 시책추진비로 지원한 10억원 등 11억원의 사업비로 세미원 조성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세미원은 4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그 해 6월 문을 열었다.

2012년 양평군은 (재)세미원을 설립하고 직접 운영에 들어갔다. 그해 11월 조선 정조시대의 배다리를 재현한 배다리-열수주교(洌水舟橋)를 개통해 두물머리와 세미원을 연결했고, 2013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정원으로 만든 세한정을 개원했다. 또, 두물머리에 조선시대 과학영농온실‧창순루‧사륜정 등을 재현한 상춘원을 개원했다.

하지만 수질 개선과 환경자원화(지역경제활성화)를 모토로 출범한 세미원은 2004~2014년 10년간 밝혀진 의혹과 비리만 15건에 이르렀다. 배다리‧세한정 조성과정의 의혹과 비리, 보조금 부당 전용, 하천부지 무단 점용 등의 문제가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세미원은 주민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출발은 비슷했는데 세미원은 왜 이런 과정을 겪게 된 것일까? ‘환경보존과 자원화’라는 본래 콘셉트를 견지하지 못한 점, 또 그 콘셉트를 주민들과 공유해 주민 주도로 끌고나가지 못한 때문이라는 생각이 두 곳의 국가정원을 탐방하며 들었다.

(사)우리문화가꾸기와 이훈석 전 대표가 어설프게 ‘문화와 역사’를 끌어들여 정원을 조성하고 독선적인 운영을 계속 했지만 2015년 본지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양평군, 양평군의회 어느 곳도 제대로 브레이크를 걸지 못 했다.

2004년 세미원 설립 당시 경기도 농업정책국장으로 업무를 담당했던 최형근 현 세미원 대표가 지난 2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정원 지정 이후에는 지역주민들과 워킹그룹을 만들 생각이다. 이 그룹에서 세미원을 포함해 두물머리, 양수리 전체의 미래상을 그려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는데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관주도와 구태,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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