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원 양평문인협회 회장

검은 물결이 일렁댄다. 엄숙하고 무거운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잔잔하게 미소 띤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이 있다.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는 것일까? 평상시 보기 힘든 얼굴들이 보이니 반가운 것일까 아니면 자식들의 영향력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무더위와 태풍이 지나가고 환절기가 오면 부음(訃音)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아직 이순(耳順)이 채 되지 않은 나는 고인은 잘 알지 못하지만 상주와의 인연 때문에 조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들어가 잘 모르는 영정사진을 보면서 조상(弔喪)을 한다.

고인이 어떤 분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잘 모른 채 상주를 통해 고인의 나이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만 알 뿐이다. 그런데 영정사진에서는 공통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사진은 미소를 짓고 있고 연세에 비해 젊은 모습이다.

얼마 전 묘사에 참석차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뵈었다.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보며 대화를 하던 중 어머니가 느닷없이 안방으로 가시더니 액자 하나를 가져와 보여주신다. 지금보다 젊고 고운 모습의 어머니 사진이다. 영정사진으로 준비하신 거라고 말씀하신다. 이 사진 역시 포토샵으로 작업을 하여 잡티 하나 없는 얼굴로 미소 짓는 모습이다. 자주 볼 수 없는 큰아들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독거노인의 알림이자 당부인 것이다.

예전의 노인들은 당신이 입을 수의는 생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을 보았지만 영정사진은 그렇지 못했다.

얼마 전, 드라마를 보다 말기암으로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친구의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었다. 자꾸 눈을 깜박거리는 친구에게 사진사가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눈을 감으면 못 뜨게 될까봐 자꾸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모습이 좋을지 여러 가지 표정을 지으면서 고민도 하고 묻기도 하였다. 그의 눈은 슬프고도 복잡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 또한 영정사진을 찍게 되면 나도 주인공처럼 내 이승의 소풍은 언제 끝날까를 생각하며 온몸으로 내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리라.

언젠가 교회의 은퇴집사할머니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은 대학교 졸업식에서 쓰는 사각모 사진이었다. 우리교회에서 운영하는 경로대학 과정을 마치면서 졸업선물로 찍어드린 사진이었다.

그분은 학교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나니 한글을 모르고 살아온 날들이 한이 되어 학사모를 쓰고 찍은 그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해 달라고 하였다는 유족의 이야기였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사회적으로, 외모 상으로 전성기가 있을 것이고 못 다한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생을 마감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때가 최고 전성기였고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것이 영정사진으로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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