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집밥, 엄마 손맛… 먼 동네에서 공부하는 딸이 매일 입에 달고 삽니다. 전 사실 집에 오면 외식이나 같이했으면 하는데… 한 끼라도 덜해야 할 나이 아닌가요? 요리에 소질이 없기도 합니다만 옛날 맛 찾는 남편까지 절 괴롭히네요. 좋은 책 없을까요?

 

A. 인터넷서점에 등록된 요리책만 해도 약 5000여권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레시피를 찾으면 나온 자료를 찾다가 허기가 질 정도로 많습니다. 집밥으로 검색하면 1200만개, 엄마손맛으로 검색하면 2100만개 정도의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 뭘 요리해야 할 지 결정하는 것도 큰일입니다. 이 참에 정말 엄마 손맛 요리 51가지 레시피가 실린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복잡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아도 돼 좋습니다.

1부 김치와 장아찌, 2부 국, 찌개와 반찬, 3부 요리, 4부 간식으로 분야별로 빠짐없이 구성돼 있습니다. 다른 요리책이랑 비슷하다고요? 아닙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손맛 보증을 섭니다. 요리마다 레시피 제공자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방제남표 술빵, 성우월광표 밤버무리, 방정자표 들깻잎튀김, 이예식표 계란찜, 정정희표 참외장아찌 등.

엄마 손맛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자 51명의 평균 연령은 75세입니다. 살림을 오래했다고 요리를 잘한다고 꼭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따라 제가 의심이 많습니다. 요리는 잘못 소개 했다가는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합니다.) 81세 김익한 할머니는 직접 만든 고추튀각이 얼마나 맛있는 지 보증인을 세웁니다.

'할머니 요리는 누가 제일 좋아해요?'라는 질문에 김익한 셰프(?)는 말합니다. “아저씨죠. 뭐, 제일 좋아하는 건 우리 아저씨(남편)죠. 뭐, (마을)회관에도 내가 갖다 드리면 어떻게 그리 바삭거리느냐고.”

이 책을 읽을 때는 고려해야 할 사항도 있습니다. 레시피에 ‘미원도 반 찻숟갈’도 들어 있습니다. 믿음이 좀 떨어지시나요?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MSG가 건강에 안 좋다는 근거는 없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됐습니다. 사실 저도 자취할 때 엄마가 가르쳐 준 몇 가지 요리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다시다입니다. ‘울 엄마 맛이 안나’라는 생각이 들 때 과감히 미원이나 다시다를 넣어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제가 몸소 체험을 한 결과입니다. MSG가 모든 레시피에 들어있지는 않으니 큰 걱정 없이 책을 보셔도 됩니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고추튀각의 명인 81세 김익한 할머니의 레시피를 잠깐 옮겨 보겠습니다.

고추튀각 : 고추에다 밀가루를 발라서 쪄서 볕에다 널어서 끄들끄들하게 말려. 밀가루를 또 발러. 발러서 널어. 그럼 배짝 말러. 고추를 밀가루 발러서 넣으면…

뭔가 이상하죠. 표준어가 아니라 사투리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레시피는 입말을 그대로 옮겨서 할머니들이 삐뚤삐뚤한 글씨로 직접 쓴 것입니다. 레시피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이 책의 제목은 <충청도 할매들의 한평생 손맛 이야기, 요리는 감이여>입니다. “요리는 레시피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감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할머니의 말 속에서 제목이 나왔습니다. 저자 이름은 감 잡으셨겠지만 ‘51명의 충청도 할매들’입니다.

이 책은 충청남도 교육청 평생 교육원에서 진행한 ‘세대 공감 인생 레시피’ 프로그램을 통해서 탄생한 책입니다. 할머니들은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배워 자신만의 요리 비법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중‧고등학생과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요리과정과 할머니들의 얼굴을 그리고 채록해서 글을 만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캐리커쳐 아래에는 자원봉사자가 녹취를 푼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모든 요리에는 재료의 맛 말고도 인생의 맛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순례 할매는 질겅이장아찌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습니다. “맛있는 것을 허면 늘 자식만 생각나. 얼른얼른 해 보내고 싶어두 애들이 밴쿠버에 있으니 이고도, 끌고도 못 가제. 방법은 비행기에 실어 보내는 건디 물기가 있으면 다 안 된다고 허니께 장아찌만 담굴밖에. 그나마 장아찌는 변하지 않아서 암말두 안 허드라구. 아들이 아버지 임종을 못 지켜 갖구 올해 제사에 왔지. 질겅이짱아찌 말고도 여러 짱아찌를 해서 먼 길 가는 아들 들려 보냈어. 그냥 보냈으면 을매나 섭허겄어.”

51명의 충청도 할매들이 쓰고 청소년과 자원봉사자들이 도운 충청도 한글학교 최고의 역작, <충청도 할매들의 한평생 손맛 이야기, 요리는 감이여>에는 할머니들이 막 배운 글에 오랫동안 익혀온 요리 비법을 담았습니다. 마음으로 먹고 입으로 즐기는 집밥, 엄마 손맛을 식욕돋는 가을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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