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윤례 소설가

부산에 사는 형님네가 거제도에 집을 지어 이사하신다고 했다. 마침 어머님 생신이 있는 여름이어서 7남매가 휴가 겸 거제도에 모이기로 했다.

몇 년 전 관절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계시는 어머님을 거제도 바닷가에 모셔서 형님네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광란의 밤을 보낸 적이 있다. 신기해서 물어보았더니 어쩌면 어머님의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르고 어머님이 즐거워하셔서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밀려오는 바닷물에 은빛 멸치가 파닥거리며 뛰노는 걸 소쿠리로 잡던 일, 고동이랑 따개비를 따느라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도 몰라 흠뻑 젖었던 일, 낚시를 하는 평화롭던 풍경, 차안에 있는 침대에서 어머님을 껴안고 잠을 자며 듣던 새벽 바닷가의 파도소리. 거제도의 추억들이 참 많다. 벌써 세 번째 여행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제주에서부터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양평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빗줄기도 굵어졌다. 부산을 거쳐 해저터널인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에 도착했다.

구순이신 어머님은 하얀 커트머리를 하고 피부가 뽀얘서 새아가 같다. 식탁에는 벌써 뷔페식으로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동그란 접시가 소복이 쌓여있고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덜어먹으니 설거지 하는 시간이 훨씬 줄고 음식쓰레기도 거의 나오지 않아 참 좋다. 모두들 형님의 센스에 감탄을 하자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형님의 얼굴에 주름살이 펴지며 활짝 웃는다.

푸릇푸릇 잔디가 자라기 시작한 정원에서 보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에 과수원도 있다. 태풍에 복숭아, 사과, 배, 모과, 감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뭇가지에서 한 개씩만 따서 물에 씻으니 색깔들이 어찌나 예쁜지! 너무 예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더니 형님들이 소녀 같다며 웃었다.

임시로 비바람을 가릴 비닐을 설치한 정원에서 그릴에 전복과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하자 잠시 잠잠하던 비바람이 갑자기 몰아쳤다. 그늘막과 비닐이 춤추듯 펄럭거릴 때마다 덩달아 흥겨워졌다. 순식간에 쏟아진 폭우는 비닐에 빗방울을 모아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을 감당하지 못해 젖소의 탱탱 불은 젖처럼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물웅덩이를 피해 이리저리 다니며 고기를 굽고 탁자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결국 하나씩 터지면서 누군가 빗물세례라도 받으면 와르르 쏟아지는 웃음소리와 함성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폭풍속 결혼식 장면처럼 흥겹다. 더 이상 물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정리하고 거실로 들어간다. 소파에 앉은 어머님은 연신 흐뭇한 표정이다. 시숙님이 딸애에게 할아버지가 생전에 자주 부르시던 노래를 같이 불러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자며 <노들강변>을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님과 딸애가 손을 잡고 웃으며 노래를 부른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메어나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흐르는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모두들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다. 그런 풍경을 본적이 없다. 웃으면서 울고 있는 모습. 시누이도 시숙님들도 모두 울고 있었다. 남편이 그렇게 많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쏟아내는 눈물이 어찌나 많은지 깜짝 놀랐다. 화장지로 닦아도 펑펑 솟아나는 눈물의 정체가. 막내여서일까? 그냥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남편이 중학생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걸까? 어느새 아이들이 남편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만지며 위로해주고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아버지가 그리워 우는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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