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얼마 전에 황당한 일을 겪었네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화해서 여기 저기 알아봤더니 마을공동수도를 위탁 관리하는 분이 마을 회의에 나오지 않는다고 수돗물을 끊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주민자치라는 말도 있지만 이건 민주주의와는 아무 관계없는 횡포 같았습니다. 단톡방을 만들어 회의를 해도 되는데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찌해야 하나요?

 

A. 얼마 전부터 공유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공공의 소유와 사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이 사시는 동네의 마을공동수도가 대표적인 공유의 대상입니다. 예전부터 공동으로 사용하던 마을우물의 개념입니다. 모두의 것이라 아끼고 깨끗하게 관리하던 마을 우물입니다. 누가 그 마을 우물의 소유권자라고 말하면서 누구는 쓰게 하고 누구는 돈을 받고 이런 규칙을 정하게 되면 예전에는 아마 그런 사람들은 쫓겨날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공유의 개념이 생긴 것은 사유재산권의 확대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관련 있습니다. 개인들이 돈을 벌어서 재산을 불리는 것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으면 유해한 환경 파괴 물질을 무제한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이번에 일본의 아베 정부에서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배출수를 바다에 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그린피스는 대표적인 사회 세력입니다.

사람들이 바다에 마구잡이로 버린 플라스틱을 다시 수집해서 환경 재해를 경고한 단체도 있습니다. 이들은 바다는 지구인 모두의 것이기에 마을 우물을 관리하듯 바다를 아끼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과 관련된 대표적인 행사가 있습니다. BFFP(Break Free From Plastic)입니다. ‘플라스틱에서 벗어나자’라는 행사입니다.

작년에 6개 대륙, 42개 나라에서 239차례에 걸쳐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서 모인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은 18만 7851개입니다. 세계의 시민들은 역시 무섭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다 세고 분류했습니다.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쓰레기 중 9216개로 1위를 차지한 곳은 코카콜라입니다. 2위는 펩시, 3위는 네슬레였습니다. 글로벌식품기업 다농, 제과업체 몬델레즈 인터내셔널이 4위와 5위를 이었습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제외한 3~5위 업체에서는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을 재활용 가능한 재료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환경, 노동, 교육 등 공동체의 각 분야에서 시민사회의 진출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용문 영상경마장 설치 반대 활동도 바로 공유의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한국에도, 전 세계적으로도 수없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분께 추천해드릴 책은 윤찬영이 쓴,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입니다. 부제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30가지 사회 혁신 실험’입니다.

공유의 개념을 잡았다면 실제 사례를 공부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공무원도, 기업인도, 전문가도 지금 사회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입증됐습니다.

“경상도 너비만한 땅에 1인당 GDP 754달러(2017년 )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작고 가난한 나라 르완다는 국제보건기구에 따르면 산모 사망률이 미국의 20배가 넘는다. 상당부분이(26%) 과다출혈 때문이다. 35개 지역 병원과 478개의 건강센터가 있지만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우간다 정부도 국제 원조기구도 아니었다. 미국의 소셜 벤처기업 짚라인은 우간다 4곳에 공급센터를 세우고 드론으로 각 의료시설에 필요한 혈액과 의약품을 실어 나른다. 한번 비행으로 150km까지 날 수 있는 드론이 우간다 전역에 혈액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수십 년 묵은 난제를 해결한 것이다. (본문 200쪽 참조)” 

사회활동에 사회적 기업을 참여시켜서 산모의 생명을 구한 사례입니다. 사회적 기업 또한 공유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고 공동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을 위해 활동합니다.

제가 봐서는 질문한 분이 겪은 상황은 수도 관리자가 국가의 사업을 위탁 받았다고 생각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통치 방식의 측면이 있습니다. 주민자치나 주민운영을 위해 회의를 해야 한다면 관리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여러 소통의 방식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일에 비용이 들거나 시간이 든다면 지자체나 마을 주민들은 여러 형태로 대표 참여자에게 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개인과 시장 그리고 국가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그때 필요한 것이 ‘우리’ 바로 시민입니다. 저자 윤찬영은 말합니다.

“물론 2~3년마다 동네 주민의 3분의1이 바뀌는 우리 현실을 떠올리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탓하며 공동체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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