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선진국의 도시개발은 패러다임이 달라진 지 꽤 오래됐다. 예를 들면 신도시주의, 스마트성장, 압축도시 등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개발밀도를 높여 토지이용 효율을 높임으로써 소중한 자산인 토지를 아끼고 농지와 녹지를 잘 보존하는 친환경 지속가능도시를 만들자’, ‘거주지와 일터를 함께 만들어 차량통행이 불필요한 보행친화도시를 만들자’,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 등 다양한 소득계층의 시민을 한 공간에 어울려 함께 살 수 있게 하는 사회혼합형(social mix) 도시를 만들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는 선진국에 진입했음에도 여러 방면에서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대단히 염려스럽다.

최근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재건축된 대형 아파트단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단지에 건설된 임대아파트가 위치도 구석에 있고, 건물도 눈에 띄게 초라하게 지어져 비난을 받고 있다. 총 23개동 중에서 2개동의 임대아파트만 7층 높이로 성냥갑 모양의 값싼 자재로 지어진 반면, 분양용 아파트 건물 21개동은 33층 높이로 타워형의 멋진 최신 건물로 지어졌다 한다.

이 단지는 강남 요지에서 진행된 재생사업이라 많은 관심 속에서 진행됐으나, 결과는 매우 차별적인 사업으로 드러났다. 이래가지고야 서울시 등 정부가 추진하는 ‘마을만들기’라는 사업 구호의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참으로 개탄할만한 일이고,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여러 지역의 도시재생사업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개발이익의 일부를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사용하는 사회통합형 개발이 시도되고 있으나, 내용면에서 많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에서 뉴타운사업이 한창 진행될 때 필자도 모 구청의 자문위원(MA라 불림)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단지설계를 맡은 회사대표가 설계도와 건물 모형을 만들어 자문위원들에게 설명했다. 멋진 48층짜리 타워형 아파트 건물이 배치된 조감도의 맨 뒤편에 성냥갑 모습의 사각형 건물이 두 채가 보였다. 혹시 상가건물인가 하고 물어보니 임대아파트라는 것이었다. 건물 디자인을 다르게 하였는가 물으니, 타워형은 많은 비용이 들어 임대아파트까지 같은 형태로 짓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래서 필자는 강한 반대의견을 냈고, 그들은 수정을 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거의 똑같은 콘셉트의 설계가 강남구에서 결과물로 나온 것이라 필자는 상당히 놀랐다. 정부가 강제해서 임대주택을 짓는 것이기는 하나 이런 방식은 옳은 방향의 개발이 결코 아니다. 정부는 사회혼합형 개발을 강조하지만, 이처럼 현장상황은 너무 다르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이 임대아파트에 살게 될 주민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사는 집의 다름’에서 받을 설움과 마음의 상처를 헤아려보시라.

국토교통부도 지난 4월에 ‘소셜 믹스’ 비율을 강화한다는 방침으로 “재개발 사업의 임대주택건설 의무 비율을 20%에서 3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숫자와 실적도 중요하나, 시민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러 선진국들의 저소득층 주택정책을 살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영국의 저소득층도 정부가 직접 임대료를 내주는 임대주택에 살지만, 똑같은 주택에 서로 뒤섞여 함께 산다. 당사자가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누가 임대주택 주민인지 자가주택 주민인지 알 수 없다.

아직은 저밀도 도시인 양평의 경우야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믿지만, 사회적 약자는 우리 사회 어느 곳이나 있기 마련이다. 책임을 가진 군청과 정치지도자들은 여러 가능성을 미리 잘 살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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