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모 프로그램이 문제가 된 모양이다. 연예인들이 정글과 같은 곳에 가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태국의 멸종위기종인 대왕조개를 채취하고 먹은 모양이다. 이에 빨리 사과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등장한 기사가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속담처럼 빨리 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감사를 받아야 하는 기업이나 발표를 하는 학생의 입장처럼 여러 상황에서 즐겨 쓰이고 있다.

이 말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남들보다 먼저 겪는 것이 뒤로 미루는 것보다 오히려 낫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속담은 폭력을 미화할 가능성이 있는 반인권적인 말이기도 하다. 1970~80년대 학창시절에는 학급에 문제가 있거나 잘못을 하게 되면 단체로 매를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 때 매를 기다리는 시간이 맞는 것보다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래서 우린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심지어 먼저 맞은 아이들은 뒤에 맞는 아이들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며 낄낄거리기까지 했다. 남의 고통을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즐기는 상황까지 가게 만드는 가장 비인간적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이 품고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 속담은 은연중에 매를 맞는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매는 분명한 폭력이다. 이 말에 의하면 어쩔 수 없는 폭력이 존재하고 이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이 말처럼 남들보다 먼저 나서는 게 실질적으로 유리하거나 적어도 심리적으로 위안이 될 수는 있는 상황이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비유할 때 굳이 폭력을 순응하고 미화하는 말을 쓸 이유는 없다.

-최형규 서종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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