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양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

우리나라에 자립생활 이념이 도입된 지 20여 년이 지나면서 장애인복지 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아직 장애인의 삶은 늘 비장애인의 그늘에서 부담과 시혜의 대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특히 중증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는 바, 이들 당사자가 자기 선택과 결정권에 따라 지역사회 내에서 당당히 자립생활을 실현할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이 요구된다.

자립생활 이념이 도입되기 전까지 장애인복지는 전형적인 의료모형(medical model)이었다. ‘손상’과 ‘장애’를 구별하지 않고 장애를 의료의 문제 또는 개인의 문제로 보는 관점이다. 장애인은 자신의 손상을 교정(재활)하거나 치료해야 하는 존재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을 돌봐주고 치료해주고 의사결정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존재로 간주된다.

이에 반해 사회모형(social model)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관점을 옹호하는 관점으로써,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이 장애를 설명하는 인식 틀인 의료모형과는 구별된다. 손상의 치유나 재활보다 장애를 유발하는 사회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의료모형이 장애를 의료화하고 장애 문제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돌리는 반면, 사회모형은 장애를 사회적 책임으로 정의함으로써 장애 문제를 사회화시킨다. 즉, 장애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비장애인 중심으로 사회를 구성해 결과적으로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같은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시작된 개념이 바로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이다. 자립생활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조정하고 삶의 전부를 관리하는 것으로, 장애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들이 영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직업적, 경제적으로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과 원조를 제공하는 일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전국에 약 200여개소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으며, 중증장애인 당사자 주도로 설립됐다. 이들은 비슷한 처지의 지역 중증장애인들에게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아보자고 외치며, 꾸준히 자립생활 운동을 진행해 왔다. 필자 역시도 오랜 세월(20년)을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자립생활을 실천한 당사자로서, 자립생활센터의 역할이 중증장애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다.

정부의 자립생활지원에 대한 기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실천되고 있어, 각 지역 활동가들의 역량 또한 더욱 강화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현재 경기도 31개 시군구 중 29개 시군에 1개소 이상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설치‧운영되고 있지만 양평에는 아직 자립생활 패러다임의 바람이 불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웠다.

양평군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양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창립은 바로 여기에 근거하며, 우리 센터는 미약하지만 지역 내외에서 모니터링, 동료상담, 장애인식개선 교육, 토론회 등 자립생활과 관련한 여러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양평군과 더불어 장애인들의 행복한 자립생활을 위해, 기존 사업들뿐만 아니라 양평군만의 특별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조화롭게 융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모쪼록 양평군 내에 장애인자립생활 이념이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양평장애인자립센터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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