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평생학습센터 강사, 공주교대 명예교수)

지난 6일 평생학습센터 강당에서 나태주 시인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굽은 등을 세우고 쳐진 어깨를 펴고 돌아서는 150명 양평 주민의 표정은 남한강 물줄기보다 더 빛났다.

나태주는 탐구하는 시인이다. 그는 우리 한시에 경탄해서 한때 당시에 빠졌고, 우리 고전시가와 근대시를 정독하고 나서 일본의 하이쿠에도 눈을 돌렸다. 그의 시에 나타난 2, 3, 4, 5, 6, 8, 10 줄 축소와 확장 시행은 이런 독시 편력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일본 하이쿠 17음절보다 더 짧은 8‧4‧3 15음절로 역전(逆轉)의 형식을 빚었다.

나태주는 ‘문사철과(文史哲科)’의 길라잡이다. 문학 역사 철학을 딛고 진화론적 발상으로 시 형식을 창조했다. 시조 형식을 밑바탕으로 스마트폰에 걸맞은 <풀꽃>을 빚은 비밀이다. 이 작품에서 <풀꽃 3>이 나왔으니 계승과 창조의 생극적(生剋的) 분만이다. 이런 강연이야말로 밥이고 술이고 흥이고 춤이다. 그래서 회오리 같은 시바람을 일으켰다.

나태주는 시를 읊을 줄 아는 시인이다. 2시부터 100분 동안 시를 암송하며 강연을 이어갔다. 그가 1945년생이니 고희의 중반이다. 20수가 넘는 시로 청중의 머리를 감기고 얼을 씻어 눈을 띄웠다. 신바람이 기억력을 불러일으킨다. 용문사를 찾은 그는 은행나무 앞에서 경건히 우러르고, 전통찻집 《미르》에 들러 연꿀빵 상자 한 쪽을 뜯어내 거기에 4연 <나무어른>을 즉흥적으로 읊었다. 외기만 하는 시인이 아니라 읊는 모습을 이창신 대표에게 보여주었다.

나태주는 문사철의 웃음꾼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식, 사랑, 시’를 꿈꾸며 살았다. ‘자식, 사랑, 시’는 그만의 꿈이 아니다. 자랑할 자식, 뜨거운 사랑, 읊고 싶은 시를 간직한 사람은 행복하다. 나 시인은 키가 작아 못생겼다고 웃긴다. 평생 동안 자전거만 타고 다니기에 “나 좀 태워 주세요.”라고 해서 ‘나태주’가 되었다니 배꼽을 잡는다. 먹구 먹구 또 먹으니 암 걸린단다. 한자 ‘암(癌)’자는 병질엄(疒) 부수에 입이 세 개인데다 산 위에 앉았으니 무덤 갈 날이 머지않다는 뜻이라네. 섬뜩한 웃음이다. 이럼에도 독자들이 시집을 사줘서 공주 ‘더부살이’를 잘 하고 요즘은 얘기꾼이 되어 전국을 떠돈다. 그렇다. 나태주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대전 어느 병원에서 더는 손댈 수 없다고 내려놓자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겼지만, 입원실도 낼 수 없어 퇴짜를 맞았던 시골뜨기 시인, 그를 살린 건 의술이 아니라 영술(靈術)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나태주는 영험한 치료사이다. 그는 고향 서천을 떠나 공주에 와서 살던 감나무집에서 냇갈 건너편 아파트로 옮긴 지 30년도 넘었을 게다. 기독교인이면서 집사고, 남을 탓하지 않고 공손해서 콧대 높은 공주에서 문화원장을 연임했다. 인세를 억대로 받는 시인이면서 운이 좋아 인기를 누린다는 간증이야말로 감동이다. 서명을 받으려는 70여 명을 차례로 옆에 앉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구 한 절, 서명 날짜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최초의 만남이 최후의 만남이 되더라도 아름다운 겸손의 자세로 동행한다. 이 과정이 치유로서의 문학적 동화요, 신앙인의 영험한 교감이다. 붙박이 시인의 생명을 나누는 서명의 동참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나태주 시인의 강연을 들으면 심청이를 만날 수 있고, 춘향이와 데이트를 즐길 수 있으며, 윤동주가 태어난 북간도에 가서 옷깃을 여미고 별도 헬 수 있다. 백두산을 넘어온 한시의 굽이, 동해 바다를 건너온 하이쿠의 물결, 영국에서 건너온 셰익스피어의 말씨 ‘자식, 사랑, 시’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으니 그는 말꾼[시인]이고, 웃음꾼이고, 얼꾼[치료사]이다.

이러한 강사 초청을 위해 양평에서 공주까지 260km를 달려 시인을 감동시켜 청중을 전율케 한 평생학습센터 운영자분들이 보여준 문화사랑의 애씀이 눈물겹게 고맙다. 양평이 어찌 물 맑고 볕만 좋은 고장이겠는가. 양평으로 옮겨 산 지 5년 만에 물맛, 볕품, 얼빛을 받아 정말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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