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엽 원불교 양평교당 교무

올 초에 남도에서 양평으로 발령을 받아 올라왔습니다. 느낌으로는 보름 정도 그곳보다 봄이 늦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봄소식처럼 한참이나 늦게 ‘8호 감방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8호 감방은 유관순 열사님을 비롯한 일곱 분의 여성독립투사들이 투옥됐던 감방으로, 그분들이 당시에 불렀던 노래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전중이 일곱이 진흙 색 일복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 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데헤이, 에헤이데헤이.”

안예은님의 노래를 들으며 어렸을 때 읽었던 우화가 떠올랐습니다.

한 예언자가 큰길에서 끊임없이 천국이 가까워졌으니 참회하라 외쳤습니다. 한 사람이 다가가 ‘아무도 당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해줬습니다. 예언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도록 소리치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 수행에 대해 ‘욕망과 싸움’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당연히 욕망과 싸우는 길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무한하게 일상과 싸워야 하고 혹은 회의와 싸워야 합니다. 드라마와 같은 삶은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 일상이 되풀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일상성에 빠지지 않고 늘 새로워야 수행입니다. 남들에게 특이한 좌선도 수행인에게는 일상입니다.

날마다 좌선을 한다며 자리에 앉을 때마다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내가 깨닫지 않고서는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별 소득 없이 그냥 일어섭니다. 염불 한마디, 좌선 한 번에 마음이 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야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될 뿐입니다. 그때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정말 바른 길인가?’라는 회의와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에 8호 감방의 일곱 분의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대한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그분들은 좁은 감방에서 세상과 고립돼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과 고문을 받았습니다. 함께 만든 저 노래를 부르며 앞의 예언자처럼 일제의 억압이 진실을 바꾸지 못하도록 그리고 세상이 나를 변하지 만들지 못하게 다짐해야 했을 것입니다.

‘전중이(징역살이 하는 사람)’, ‘진흙 색 일복(죄수복)’, ‘콩밥덩이’이라는 고통과 비루한 현실이지만, 그것은 사실 ‘대한이 살아남’이며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 우주적 대사건이라는 그분들의 선언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종교인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비 성직자 시절에 아침에 청소를 할 때면 스승님들이 말씀하셨지요. ‘너희들이 지금 마당을 쓰는 것이 세계사업이다!’ 그때는 그저 일상의 중요함에 대한 가르침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만큼 나이를 먹은 이즈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다짐해야 일상이 깨달음의 영역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 개인이 선하게 살기 위해 혹은 인간다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노력이 필요할 때도 있고, 온 세상의 질서와 싸워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똑같이 힘들고 두려웠지만, 저와 달리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그 청춘들의 노래를 모두가 함께 들어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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