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난순 문인협회 회원(수필가)

폭설이 내리는 겨울의 끝자락. 병원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통증의 괴로움을 잊고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창가에 놓인 화분에서 웃음 같은 꽃망울을 찾아보았다. 파랗고 도톰한 잎들이 사이좋은 형제처럼 옹기종기 달려 있다.

창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양평시내 전경이 적설에 파묻혀 순백색이다. 지금은 세월의 물살을 타고 변했지만 바로 저 아래 삼거리 정미소 옆에 내 어린 시절 추억이 잠겨있는 작은 기와집이 있었다. 그 집 아랫목에서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맏이인 내 손을 잡고 난산을 이겨냈다. 떨리는 손으로 첫국밥을 들고 들어갔던 피비린내 가득한 방에서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한 여인의 측은한 모습을 보았다. 그 후 아버지의 실직으로 생활고를 짊어진 어머니의 등에는 다섯 남매가 매달렸다. 그러나 철없던 나는 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노동에 시달리는 줄 뻔히 알면서도 동생들을 내 팽개치고 친구들과 뛰어 노느라 해 지는 줄 몰랐다. 땅거미가 질 무렵, 꾀죄죄한 얼굴로 들어서는 내게 말보다 손이 먼저 올라갔던 어머니는 밤을 새워 재봉틀을 돌렸다.

오래 전, 오늘처럼 주먹 만 한 눈송이가 쏟아지던 날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일 년을 한고개로 친다면 일흔 고개를 넘으며 돌아가셨으니 지금 내가 막 어머니의 그 나이를 지나가고 있다. 편편치 못한 인생길을 걷다보니 그간 내 몸에도 여러 아픔이 찾아왔다. 그럭저럭 잘 견뎌내었으나 며칠 전에 넘어져서 발목뼈를 다쳐 또 입원하게 되었다. 당연한 듯 끊임 없이 움직여주던, 웬만한 타격에는 파스 한 장으로 씩씩하게 버텨주었던 육체의 한 부분이 무너졌다. 실바람에 쓰러지는 오래된 집처럼 관리 못하고 방심한 틈을 비집고 불운이 찾아온 것이다. 도처에 깔린 사고의 그물망에 무방비 했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앞으로 어떤 병마가 어떤 식으로 찾아와 괴롭힐지 생각할수록 우울해진다.

부기가 가라앉자 깁스를 했다. 마치 발목에 유리 코끼리 하나가 달라붙은 듯 무겁고 조심스럽다. 거기다가 링거까지 꽂은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정지 된 바쁜 일상. 뼈가 붙을 때까지 참아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일각이 여삼추다.

내가 있는 다인 실에는 각각 다른 아픔의 신음 소리를 질러대는 환자들로 넘쳐난다. 건너편 침대에는 고관절 수술을 한 구십대 할머니가 자식들이 내팽개치듯 맡기고 간 요양보호사의 형식적인 간호를 받고 있다. 구박의 색깔을 감춘 요양사의 눈길을 피해 가끔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고통스런 표정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그토록 고독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삶의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에서 멀지 않은 나의 미래가 그려진다.

부스스한 머릿속이 가렵다. 샴푸를 하려면 깁스한 곳이 물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싸매고 목발을 짚은 채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 번거로워 꿉꿉함을 견디다가 행동이 느린 남편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는데 오늘은 혼자니 참는 수밖에 없다.

그때였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근처에 사는 여동생이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도 언니가 신경 쓰여 자주 드나드는데 오늘은 김밥을 맛있게 만들었다 한다.

“왜, 또 왔어!” 퉁명스런 반가움의 표현을 귓등으로 흘리고 동생은 세면대에 내 머리를 눕힌 채 샴푸를 하며 손가락 끝으로 두피를 시원하게 긁어준다. 그러다가 “그러고 보니 언니 머리 감겨 주는 게 처음이네” 한다.

비눗물을 걷으며 눈을 뜨자 어린 시절, 드센 언니와 귀한 남동생에 치여 없는 듯 지냈던 동생의 얼굴에서 어머니 모습이 겹쳐진다. 순간 가슴이 요동치며 울컥 눈물이 솟았다. 고개를 돌리는 동생 눈가도 붉어진 것 같았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창가에 앉았는데 아까 못 들었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화분 속 베고니아의 붉은 꽃망울이 터지고 있었고 자세히 보았더니 이미 피어났으나 없는 듯 잎 속에 조용히 숨어있는 꽃송이도 있다. 귀엽고 어여뻐 눈길이 머무는 동안 가슴 한쪽이 봄처럼 따듯해진다. 감동과 위안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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