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윤례 소설가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은 새벽 산책길에서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 나에게 반갑게 달려오더니 눈빛이 마주치자 실망하는 표정으로 뒤돌아 가버렸다.

점심때쯤 맞은편에서 새벽에 본 그 아이가 나에게 뛰어오더니 갑자기 딱 멈췄다. 그러더니 다른 사람에게로 막 달려가다가 또 멈추었다. 차가 오면 차를 따라 달려가서 멈춘 뒤 사람을 확인하고 또 뒤돌아섰다. 혹시 길을 잃었나. 설마 버려졌나. 주인이 큰길 쪽으로 차를 타고 가버렸는지 그쪽으로 달려가다가 인기척이 나면 반대편으로 필사적으로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혼비백산한 표정이었다. 처절하게 뛰어다녔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는 차가 다닐 때마다 흙먼지를 뿌옇게 토해냈다. 혹여 차에 치일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안 보려고 해도 보였다. 사무실에 있어도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가도 주차장이 한눈에 보였다.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 친구가 사료와 간식을 가져왔다. 물을 주고 간식으로 유인을 해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넋이 빠진 표정이었다. 엄마 잃은 아이의 표정 같았다. 다른 친구가 강아지를 키울만한 곳 몇 군데를 알아보았지만 구하지 못했다. 나도 키울 곳이 마땅치 않아 마당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오래전에 쓴 <아침이 오면>이라는 단편소설 속에서 강아지 똘이에게 못된 짓을 한 적이 있다. 꼭 그 녀석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름을 똘이라고 지어주었다.

비가 올 것 같아 나무로 된 집에 헌 옷가지를 깔아준 뒤 사료와 간식을 주었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고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비가 와도 쉬지 않고 사람이나 차가 오면 달려갔다가 실망한 듯 뒤돌아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3일쯤 지나자 똘이는 차나 사람이 지나가도 더 이상 쫓아가지 않았다. 땅바닥에 엎드려 뒹굴며 놀거나 턱을 괴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씩 참새를 쫒아 다니거나 들고양이를 따라다니곤 했다. 똘이만 보면 쫓아버리는 빨간 셔츠를 입은 아저씨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왜 그러냐고 물었다.

“불쌍하잖아요. 작고 사람이 무서워 도망 다니는 게. 무섭게 생기지도 않고 힘도 없는 생명이잖아요. 살 수 있는 한 살아야죠. 쫓아버리지 말아주세요. 신고도 했고 지금 키울 주인을 찾고 있으니 좀 기다려주세요.”

“사람을 따르지도 않고 저렇게 도망만 가는 걸 보니 학대 받은 개 같아. 얼굴이 사자새끼 같이 생긴 게 참 못생겼다. 나이도 좀 있는 것 같은데 누가 키우려고 하려나.”

사람들이 틈틈이 사료를 갖다 준 덕분인지 나름 건강한 상태로 잘 살아남은 똘이는 들개처럼 자유로워 보인다. 풀밭에서 뛰어놀다가 가끔씩 주차장에 앉아 있다. 며칠 안 보이면 자유의 냄새를 묻혀 돌아온다.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 도망만 가더니 이젠 학교 가는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껄해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잠들어 있다. 누군가 오라고 손짓하면 빤히 바라보고만 있다. 제발 누군가 데려가서 따뜻하게 보살피길!

정성껏 가꾼 꽃밭에 데이지꽃, 달맞이꽃, 금계국이 예쁘게 피어났다가 시들었다. 이제 초롱꽃, 루드베키아, 나팔꽃, 코스모스가 막 피어나고 있다. 똘이가 심심한지 하얀 나비를 쫓아다니다가 꽃밭에 들어가니 꽃들이 화들짝 놀란다. 멀리서 보니 춤추는 것 같다. 꽃밭에서 쫓아내려고 나가보니 어느새 능소화 그늘 아래 토끼풀에 턱을 괴고 앉아있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참 다행이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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