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양평물맑은시장 쉼터 공연

목각인형 말로가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

작가가 건네는 헤드폰을 귀에 꽂고 상자 속을 들여다보니 한 겨울 풍경이 펼쳐졌다.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몸을 숨기고 있던 동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숨죽이며 걷는 산새, 눈 위를 뛰노는 토끼, 늑대의 울음소리. 산이 흔들리며 곰이 깨어났고, 마침내 얼음을 뚫고 새싹이 돋아났다.

지난 8일 양평물맑은시장 쉼터에서 열린 <양평 장돌뱅이 극장> 프로그램 중 하나인 ‘연두’를 관람했다. 한 사람 만을 위한 아주 작은 공연이 펼쳐졌고, 복잡한 시장에서 공간이동을 한 듯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들었다.

<양평 장돌뱅이 극장>은 양평의 극단 낮은산(대표 차선희)이 주최‧주관하고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아주 작은 극장’이다. 한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이 공연은 해외에서는 ‘스몰씨어터’ ‘미니어쳐씨어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독립공연예술가네트워크 예술가들이 주변 재활용품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아주 작은극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양평역과 양수역에서 첫 선을 보여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잠들었던 천사가 관객에게 편지를 써준다.

이날 공연은 2019 문예진흥공모지원사업인 양평 문화 양성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됐다. 오일장날에 맞춰 외부 관광객들과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진행됐는데, 한 어르신은 안내판을 보더니 몇 시에 시작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시골 장마당에서 펼쳐지던 공연인가 싶어 궁금증이 일었던 모양이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객의 다수는 부모를 따라 장 구경을 나온 어린이들이었다. 광주에서 온 윤지호(10살)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프로그램이 참여했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던 소녀(인형)는 땅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자 땅이 열리며 잠들었던 천사가 깨어나 관객에게 모래 편지를 써준다.

‘윤지호, 넌 언제나 소중한 친구야’

천사는 윤지호와 악수를 나누고는 이내 땅속으로 사라진다.

지호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홀린 듯한 표정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쉼터에서는 이밖에도 ▲문재현의 ‘말로의 작업실’ ▲최민자의 ‘작은새’ ▲이강미의 ‘작은광대 우주극장’ ▲홍윤경의 ‘길 위에서’ ▲한혜민의 ‘거울의 방’ ▲노성신의 ‘모자 속 요정 샤뽀’ 등이 오전 11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한 사람 만을 위한 짧은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2~3명씩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는데, 처음 보는 색다른 거리공연문화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민규 PD는 “이번 공연은 양평의 거리공연문화의 다양성을 제시하고, 지역 문화를 활성화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채로운 방식과 시도들로 양평의 공연문화에 새로운 모습들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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