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윤례 소설가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 8시가 되면 요가를 하러 다닌다. 지난주에는 회식을 한 뒤 야외수업을 한다고 했다. 6시에 주차장에서 만나 식당으로 갔다. 도다리쑥국과 갈치조림을 시킨 뒤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 앉았다. 비주류는 강된장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배우느라 진지한 표정이고, 주류는 막걸리를 마실까 맥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소맥으로 합의를 보고 흐뭇해했다.

2차 집결지에는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 몇 명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서 만나니 더 반가워 손을 잡으며 소녀들처럼 별것도 아닌 것에 까르르 웃어댄다. 달콤한 아카시향이 바람에 실려 온다. 누군가 “와, 별이 참 많네” 하는 소리에 하늘을 보니 아직 채 차지 않은 보름달이 유난히 밝다.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투영된 물그림자가 고흐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닮은 밤풍경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멀리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를 재현해놓은 세미원 매표소가 환하게 불빛을 밝힌다. 배다리의 깃발도 청사초롱 불빛에 반사되어 더 펄럭인다.

두물머리 연못에는 어느새 연둣빛 연잎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연잎 새싹들이 물에 둥둥 떠 있다. 하트처럼 보이기도 하고 완두콩을 데칼코마니 해놓은 것도 같다. 연못 주변에는 노란 창포가 달빛에 더 선명하다. 벌써 무릎 높이로 자란 갈대가 칼날처럼 뾰족뾰족하다. 그 사이로 들리는 개구리들의 합창소리. 일제히 아우성을 치다가 갑자기 뚝 그치기를 반복한다.

이맘때면 연못의 물빛이 참 예쁘다. 모네의 수련 그림들보다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로 피어난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 연못과 너무나 닮아 보이는 색감과 분위기가 좋다. 해마다 그 색깔에 취하게 된다. 몇 년 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모네의 수련 연작들을 보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섰다가 뮤지엄 패스에 문제가 생겨 끝내 그림을 보지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을 또 한 차례 기다린다. 만나자마자 서로 껴안고 손뼉 치며 반가워한다. 하루의 힘든 일상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되찾는다. 어릴 적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친구를 불러내는 것처럼 즐겁다. 캄캄한 두물머리가 시끌벅적해진다.

두물경 가는 길, 이팝나무들이 달빛 아래 춤추고 있다. 하얀 쌀밥처럼, 눈송이처럼 두둥실 하늘에 떠 있다. 누군가 이팝나무에 얽힌 전설을 얘기했다.

“아이구, 불쌍해라. 옛날엔 왜 그렇게 시어머니랑 며느리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을까?”

“이팝나무랑 비슷한 조팝나무가 있는데 향이 더 진해. 조팝나무는 발음을 잘해야 돼.”

그 말에 또 한바탕 와르르 웃음이 쏟아진다.

족자섬을 바라보며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커플요가를 한다. 두 팔을 활짝 벌려 상대방을 비틀거나 안마해주자 여기저기에서 아이고, 하는 신음소리와 비명소리가 웃음소리에 버무려진다. 요가를 마치고 모두 박수를 치며 마무리를 했다. 그때 내 짝꿍이었던 분이 지난 겨울 눈 오는 날 두물경에 와서 요가 시간에 배운 춤을 혼자 추었다면서 노래를 불렀다. 흰 눈이 내리는 날 혼자 춤추는 여인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동안 요가 시작 전, 몸을 풀기 위해 ‘아모르파티’ 노래에 맞춰 추었던 라인댄스가 생각났다. 달빛에 취해, 별빛에 취해 나도 혼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어본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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