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근 양평수필사랑 회원(수필가)

퇴촌에서 이어지는 국도 88번을 따라 길을 달린다. 퇴촌에서 깊은 산 속 같은 고갯길을 넘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광주시 퇴촌면에서 양평군으로 지역이 바뀐다.

길은 같은 길이건만 양평으로 바뀐 지 얼마 후에는 왼쪽으로 강이 보이는 길이다. 산을 넘는 것도 좋지만 강이 보이면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물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면서 맞서 싸우지 않고 피해가는 현명함도 준다. 우리의 마음을 정제시키고 순응을 배우게 한다. 가까이서 흐르는 물을 오래 보고 있으면 빠져들어 같이 흘러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멀리서 보이는 물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물이기에 양평을 남북으로 흐르는 남한강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지으려면 땅값이 비싸다.

강이 보이는 길, 강하면과 강상면을 지나는 10여 km의 길은 아름답다. 우리 집에서 읍내로 나가려면 이 길을 달려야 한다. 전철을 타거나 운동을 하러 나는 거의 매일 이 길을 달린다. 호수같이 잔잔한 물, 바람에 파도가 일렁이는 강, 눈 덮인 원시의 강. 십 여 년간 이 길을 달리면서 나는 사시사철 변화가 무쌍한, 싫증나지 않는 그런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곤 했다.

강을 바로 옆에 두고 가는 길은 아니어서 계속 강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상가와 모텔들이 강을 가리고 있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군데군데 뚫려 강이 보이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맛보는 것이 좋았다.

높아야 2-3층의 나지막한 상가 모텔들이 있던 강 쪽 땅에 갑자기 7층 건물이 올라간다. 그동안 있었던 단 하나의 8층 모텔도 보기 흉했는데 7층 건물은 완성도 되기 전부터 보기만 해도 숨이 답답하다. 그동안 걸려있던 무슨 규제가 풀렸다고 한다. 이제 앞으로는 얼마나 더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강을 가리게 될지 모른다. 들락날락 보이던 강의 모습이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면 강 따라 달리던 길의 명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휴가철에는 사람들이 몰려 거북이걸음으로 달리는 길. 교외의 한적함을 즐기고자 오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양쪽으로 모텔과 음식점만 가득 들어차면 어떻게 될까. 재산권 사용도 좋지만 그러기 전에 도시계획적인 설계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강변에 면한 다른 시에서는 모텔을 사서 허물고 강변을 자연 상태로 두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길의 강 쪽으로 난 땅에는 낮은 건물을 길 반대편에만 높은 건물을 짓게 하면 어떨까. 오늘도 강을 따라 달리면서 생각한다. 강 주위가 아름다운 길을 유지해서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즐기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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