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며칠 전 집 근처 치과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는데 간호사와 손님인 아이 엄마가 자녀교육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치료를 마치면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 여파로 아이의 학업디자인 상담을 받으러 간다고 했다. 간호사는 필자를 가리키며 “여기 대학교수님이 계시니 즉석 상담 받으세요”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두었다. 필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5학년이면 실컷 놀게 놔두세요”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답한다. “교수님, 그러면 우리 아이 큰일 납니다. 좋은 대학 어떻게 가요?”

부부가 한의사인 필자의 친척 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를 8개의 학원에 보낸다고 들었다. 얼마 후 한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아이고, 너 어린 애를 잡아라 잡아”라고 핀잔을 주었다. “오빠, 그러면 큰일 나요. 우리 애 장래 망쳐요”라는 답이 왔다. 그 다음 해에는 필리핀으로 영어연수를 보냈다 한다.

필자가 유학생 시절 큰 아이가 LA 시내 코리아타운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하루는 아이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사회과목 숙제를 보여주었다. 공원그림이 있는 과제물인데, 질문은 단 하나 ‘이 아름다운 공원을 누구와 함께 공유(share)하겠는가?’였다. 초등학교 1학년 문제치고 매우 어려운 주관식 문제였다. 그림은 벌, 새, 나비, 꽃 등이 故 천경자 화백의 그림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 숙제는 ‘초등1학년생 때부터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일찌감치 가르쳐 주려는 의도’의 문제였던 것이다.

학기가 끝날 무렵 아이가 시민정신상(Citizenship Prize)이라는 낮선 상을 받아왔다. 교장선생님과 상장을 들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제목의 상이 뭔지 궁금했다. 어려서 받았던 모범상인가? 우등상? 개근상? 그래서 달마다 한 번 열리는 학부모회의에 가서 담임선생님께 슬쩍 여쭈었다. 그 분은 젊은 유대인 여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무척 엄격한 분이었다. “네, 그것은 절반은 좋은 학업성적을 보고, 나머지 절반은 남을 잘 도와주는(help others) 학생에게 주는 상입니다”라고 했다. ‘남을 잘 돕는 학생?’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었다. 그 선생님은 “3학년까지 이 상을 5번 받으면 4학년 때 영재학교로 전학갈 수 있다”고 했다. 25명의 학급에서 단 한 명에게 주는 상인데, 공부만 잘해서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상을 받아야 영재학교 갈 자격이 부여된다니 더더욱 놀랐다. 필자가 알던 우리의 영재상과는 너무 달랐다.

얼마 뒤에 사건이 생겼다. 필자의 대학원 친구의 아들 A가 같은 반 학생이었는데, 병설 유치원으로 유급됐다는 소식이었다(캘리포니아는 유급과 월반이 있다). 깜짝 놀라 물었더니, “걔는 공부는 무척 잘하는데, 다른 아이들을 너무 괴롭히는 말썽꾸러기라 선생님한테 자주 혼나요”란다. 사실 A는 한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천재로 소문난 똑똑한 아이였다. 한국의 유명대학 출신인 부모의 충격과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결국 그 부부는 담임과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강력한 항의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편, 큰 아이의 2년 선배인 B는 4학년 때 영재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교 졸업 후 최우수 학생들만 입학한다는 캘리포니아공대(CIT)에 가서 박사를 마치고, 20대 후반에 스위스 연방공대 교수가 되었다. 그는 남을 잘 돕는 아이였다. 필자의 큰 아이는 그 뒤 상을 몇 번 더 받았지만, 공부 마친 부모를 따라 귀국했다. 물론 국내에서 공부는 곧잘 했지만, 영재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다.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최고위공직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분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엘리트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오로지 1등만을 추구하는 교육시스템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남에 대한 배려는커녕 옆의 친구도 짓밟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교육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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