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얼마 전에 제대한 26살 청년입니다. 사실 제 미래가 암담해 이렇게 문의를 합니다. 지금까지 축구만 하다가 입단도 못하고 결국 군대를 갔다 왔습니다. 아는 것은 축구밖에 없는데 선수로 활동은 어렵고 뭘 다시 시작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끔 괜히 축구를 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세상 가장 힘들 때를 꼽으라면 아마도 살아온 인생을 부정할 때일 것 같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과거를 잊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법대를 나와서 글을 쓰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주 저에게 묻습니다. ‘왜 변호사 안하고?’ 이 말 한 마디에 제 대학 생활은 송두리째 부정당합니다. 축구 선수로 자라나서 변호사를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남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그냥 우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미국의 한 학자가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들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아마추어 야구 선수 들 중에서 미국 마이너리그에 뽑힌 선수들은 17,925명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 이상 뛴 선수는 1,326명 뿐이었다고 합니다. 약 7.4%. 사실 마이너리그에 뽑힌 선수도 대단합니다. 그 전에 수 만 명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가기 위해 마이너리그에 문을 두드렸을테니까요. 그런데 미국의 야구 소년들은 마이너리그에 가려고 그 고된 훈련을 견뎠을까요? 아마 아닐겁니다. 모두 1300여명의 메이저리그 선수 명단에 들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것입니다. 마이너리그에서만 뛴 것을 꿈이 좌절되었다고 하면 만 명이 넘는 선수들은 좌절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살고 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을 교대로 맞아가며 그냥 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 양평 도서관에서 강의를 했던 소설가 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책에서 김영하는 인생과 여행을 같은 자리에 놓습니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을지언정 평생을 들여 이룬 작은 성취가 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명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너무 결과론적인가요? 정신 승리일 뿐일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운동은 끊임없는 유혹과의 싸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술도, 과식도, 담배도… 모든 것을 거부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움직임을 해야 하는 스포츠 선수들은 자기 관리만이 성장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도 이런 인내와 자기 관리를 운동 과정을 통해 배웠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인내심을 배우려고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축구를 하다가 인내심이라는 덕목을 몸에 익혔을 것입니다. 욕망과의 싸움은 축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업, 공부, 노동 그 어떤 일이든 필요한 덕목입니다.

작가 김영하는 이렇게 목적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지만 과정에서 다른 배움을 얻는 소설 구성을 ‘추구의 플롯’이라고 말합니다. 추구의 플롯은 어쩌면 여행과 비슷하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는 꼭 가야 해!’라고 결심했지만 사고 때문에 도착하지 못해도 다른 여정이 펼쳐지거나 과정에서 교훈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방 견문록>을 썼던 마르코 폴로의 여행 목적은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 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번 상인으로만 남았다면 우리는 마르코 폴로와 원나라의 황제와 신하들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마르코 폴로는 여행 정확히 출장을 갔던 것이죠. 그리고 일기를 열심히 썼습니다.

당신도 마르코 폴로일 수 있습니다. 일기를 쓰지 않아도 당신의 몸에는 차별화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다른 길을 찾는 다고 애써 과거의 모습을 지우지 말고 내면을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운동장을 뛰고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순발력 훈련을 하고 포지션에 맞는 전술 훈련을 소화했던 당신, 그리고 동료들과 협력을 위해 소통했던 당신.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미래를 위해 당신의 과거가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김영하는 말합니다. “’추구의 플롯’에 따라 잘 쓰인 이야기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인생을 여행처럼 살라는 김영하의 말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여행처럼 바라보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여행가기 전날 밤의 설레임처럼 맞으라는 말일 것입니다. 여행이 공간이동 이라면 인생은 시간이동이기 때문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당신의 여행이 새롭게 시작되기 전에… 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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