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윤례 소설가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백설기처럼 포슬포슬해지면 흙이랑 놀고 싶다. 봄비라도 내리고 나면 말랑말랑해진 흙으로 뭔가를 만들고 싶고 작은 씨앗이라도 뿌리고 싶다. 동네 놀이터와 자치센터 사이 모퉁이에 낙엽으로 뒤덮인 책상만한 공터가 있다. 문득 거기에 꽃을 심어보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꽃씨가 있으면 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난 다음날 아침, 아는 교수 한 분이 서울 나가는 길에 모종을 자치센터 앞에 놓아두고 가겠다고 했다. 자신의 책을 내기 전에, 출판사에 오래 근무한 내게 원고를 봐달라고 했던 분이었다. 그때 책이 출간된 기념으로 출판사 대표와 나를 집에 초대했었다. 그 집 정원에는 작은 연못과 바위 사이로 온갖 봄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꽃들이 어찌나 신기한지 한참을 꽃에 취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른 시간이라 혹시 모종이 추울까봐 얼른 나가보았다. 풀과 나무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상고대가 피어 있었다. 어린 새싹들이 세 박스에 옹기종기 담겨 있었다. 키가 작은 순서대로 나열해놓은 메모에는 꽃 이름도 쓰여 있었다. 샤스타 데이지, 루드베키아, 에키네시아, 무늬 구절초, 용담, 황금달맞이, 금계국, 섬초롱, 애플민트, 알프스 민들레, 모두 열 가지나 되었다. 그때 그 집에서 본 꽃들이리라. 그 예쁜 정원에서 살고 있던 귀한 애들을 햇볕도 잘 들지 않은 북향의 비탈진 길모퉁이로 옮겨 놓으려니 마냥 미안하고 잘 자랄지 걱정부터 되었다.

호미로 흙을 파고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어린 새싹들을 심을 때마다 한 포기 한 포기 축복해주었다. ‘에구. 어리기도 해라. 잘 살아라.’, ‘무럭무럭 자라 이쁜 꽃 피우거라.’, ‘넌 씩씩하구나. 이름이 뭐니?’ 이렇게 얘기해주면서 다 심고 보니 한 박스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간은 훌쩍 지나고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때까지는 키 순서대로 심었는데 나머지는 그냥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심었다. 허브에서 나는 건지, 구절초에서 나는 건지 손에서 기분 좋은 향이 배어 나왔다. 내친 김에 나팔꽃과 코스모스, 수세미 씨앗도 뿌려주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어린 새싹들 이름을 묻자 난 신이 나서 꽃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몇 개 캐 가면 안돼요? 우리 집 정원에도 심게.”

“저도 부탁해서 얻어 온 거에요. 지금 겨우 심었는데.”

그러자 ‘나중에 캐 가야 되겠다’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헉. 말문이 막혔다. 그냥 꽃모종이라고 할 걸 너무 친절하게 꽃 이름을 가르쳐줬나, 살짝 후회가 되었다.

문득 오래전 주말농장에서 키운 배추를 도둑맞았던 일이 기억났다. 관악산 근처에 살던 시절,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배추씨, 무씨, 상추씨를 뿌려놓았다. 늦둥이라도 본 듯 아침저녁으로 들러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자 새싹이 촘촘히 났다. 그 새싹들을 뽑아 이웃과 나누고도 남아돌아 비빔밥이나 된장국을 실컷 해먹었다. 하얀 무꽃이 피면 하얀 나비들이 날아들어 매일 춤을 추었다. 배추는 얼마나 탐스럽든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배추를 볼 때마다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수확을 하러 간 날 아침 밭에 나가보니 누군가가 작고 볼품없는 배추 두 포기만 남겨놓고 싹 뽑아가 버렸다. 얼마나 아깝고 속상하던지. 돈이나 물건을 잃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마음이 아팠다. 그때의 기억이 새삼 되살아나는 건 왜일까?

어린 새싹들은 힘없이 기울어져 혼자 서지 못하고 시들시들했다. 물을 뿌려주자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생명의 기쁨과 환희, 즐거웠다. 조금 있으면 또 씨앗들에서 싹이 나 이 꽃 저 꽃 피어나겠지. 설령 새들이 쪼아 먹거나 비에 쓸려 싹이 나지 않더라도 반타작은 하겠지, 생각하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봄바람에 벚꽃 잎이 휘날려 새싹들을 살포시 덮어준다. 어느 집 마당에 피어나는지 라일락 향도 바람에 실려 온다. 참 아름다운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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