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전 장애인식개선 강사

장애인 관련 활동을 하면서부터 4월 하면 가장 먼저 ‘장애인의 날이 있는 달이구나, 여러 행사로 바쁘겠구나, 단지 의미 있는 날을 넘어서는 더 확실한 사회변화의 가능성을 이번 장애인의 날에는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해마다 큰 변화는 없다.

그래도 변화라고 한다면 ‘비장애인들의 장기자랑을 아무런 감흥도 의미도 없이 장애인의 날이니 앞에 앉아서 구경이나 하시고 식사하시고 오늘 하루 즐겁다고 생각하시오’ 하지는 않는다는 것. 적어도 주최 기관 종사자나 자원봉사자들의 의식이 장애 비장애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 어울릴 수 있고 의미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이즈음에 나오는 말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일 년에 하루를 선택해 행사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장애를 상기하고 인식을 개선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말한다. 반대로 일 년 중에 하루라도 날짜를 정해서 상기하지 않으면 잊히므로 그 즈음에서 상기하고 복기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는 단 하루만이라도 기억하고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활동하기를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다.

다음 주로 다가온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인을 호칭으로 쓰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지난 30년 간 아이의 부모로 살아 온 중에 10년을 장애인의 부모로 활동하고 사회변화를 꿈꾸며 우리 아이가 나만큼 나이를 먹어도 살던 집에 있는 그대로 살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활동했다.

혼자 살아도 위생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궁극적으로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당연히 누리는 것을 장애인이어도 함께 누리는 일이 더 이상 시혜(施惠)나 배려가 아닌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활동해왔다.

나의 아이가 이제 청년이 되고 장년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돼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 흔히들 옛날보다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사회가 바뀐 것이지 좋아졌다고 말 하기는 언제나 부족하다.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부르짖으며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이리저리 회의를 다니며 정책을 제안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관련 문제를 모색하고 또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화한다. 이 또한 당연하게도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다. 장애 계만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애인’이라고 사회서비스 보장 용어가 붙여진 사람과, 관련 기관과, 단체가 가장 취약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가장 소외되고 가장 어렵다.

몇 년 전 장애인식개선 강의를 갔다. 고3이었다. 한 학생이 장애인식개선 강의가 따로 없었던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다 아는 내용이란다. 그래서 그렇다면 왜 자꾸만 학교로 와서 이런 강의를 계속하는 걸까? 라고 물었더니 알고 있어도 실천을 하지 않는단다. 맞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은 의미로 살아가는데 배워도, 알고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그 의미는 없어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의미를 찾고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다. 매년 있는 4월, 해마다 찾아오는 장애인의 날 즈음의 이야기들은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올해 장애인의 날이 지나가면 뭐가 더 달라질까? 장애인의 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고 사회 환경은 또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4월이다.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은 갈 수 있고 말로 의사전달을 잘 못하더라도, 또 잘 안돼 오래 걸려도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는 어려운 걸까? 어떤 사람이 시각장애가 있어 조심조심 걸어 내 옆을 지날 때 어깨를 부딪치지 않게 걸어가는 건 어려운 걸까?

더 이상의 장애인의 날을 특정 짓지 않고도 일상에서 개별화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그런 날을 만들기 위해 사회와 정부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기를, 그렇게 되기 위한 활동가로서의 역할이 더 필요하지 않는 세상은 너무나 막연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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