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요즘이 더 힘드네요. 밤마다 미국 드라마를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시즌이 5~6까지 가면 60시간 정도를 컴퓨터 앞에서 떨어지지 못합니다. 매일 밤을 새니 밤낮이 바뀌고 몸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어째야 할지?

 

A.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5박6일 동안 한 번에 정주행한 저로서는 깊이 공감(?)하는 일입니다. 여행이나 독서, 산책 등 좋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두운 구석에서 계속 드라마를 보고 있는 모습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직장을 쉬는 기간에 말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의지가 부족하다거나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5박6일 동안 드라마를 보는 일.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항상 본방 사수를 했던 드라마 재방송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런 장면이 있었나?’ ‘아 저런 암시가 있었구나’ 마치 처음 보는 드라마처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이건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원수(웬수) 같은 기억력 때문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한 심리학자는 1920년 대 러시아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입니다. 자이가르닉은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간단한 심리학 실험을 진행합니다. 과제를 내주고 답안을 제출하는 실험입니다. 한 그룹은 조용하게 과제를 시행하게 해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TV를 틀거나 시끄럽게 해서 과제 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조용하게 과제를 했던 그룹은 대부분 과제를 끝냈지만 방해 받은 그룹은 과제를 끝내지 못했습니다. 실험이 끝난 후 이 두 그룹에게 간단한 설문 조사를 합니다. ‘내준 과제가 무엇인가?’ 놀랍게도 과제를 잘 마친 그룹의 32%만 이 문제를 기억했습니다. 반대로 과제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 그룹은 68%나 과제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실험이 끝난 후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뇌는 완벽하게 끝낸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끝내지 못한 일은 계속해서 뇌리에 남아 잘 기억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경향을 ‘자이가르닉 효과’ 또는 ‘미완성 효과’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시험이 끝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를 이미 수 십 차례 경험했습니다. 시험이라는 과제가 완성되고 나면 우리 뇌는 우리의 의지와 다르게 다 잊게 됩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해서 돈을 버는 곳이 드라마 제작사입니다. 12회 연작 드라마는 각 회마다 미완성으로 끝나게 됩니다. 끝나지 않은 드라마는 우리 머리 속에 확실하게 기억을 남깁니다. 드라마가 완결되면 스토리와 대사는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지금까지 보신 이야기는 얼마 전 출간된 책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의 <삶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입니다. 부제는 ‘넛지부터 팃포탯까지, 심리와 세상을 꿰뚫는 행동경제학’입니다. 이 책에서 이완배 기자는 첫사랑이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는 이유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첫사랑도 미완성 효과 즉 자이가르닉 효과 때문입니다.

이 책은 신기합니다. 경제전문기자가 경제학 책을 쓰는 데 신기하게도 심리학 이야기가 가득 차있습니다. 이런 심리학, 뇌과학, 동물행동학 등을 담은 경제학이 ‘행동경제학’입니다. 1960년 대 이후 급격한 발전을 보이는 심리학이 경제학과 합쳐진 것이 행동경제학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이기적 인간, 합리적 인간 이런 유형화된 인간이 아니라 실수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인간들을 탐구합니다. 다이어트에 실패 하는 이유, 명품에 집착하는 이유, 해본 사람이 왜 더 모를까 등 행동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우리의 일상과 접목시켜 설명합니다. 오류와 비합리로 가득한 인간 행동 패턴을 알게 되면 우리 행동의 원인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완배 기자는 이 원인을 가지고 사회적인 이슈 ‘금수저’ ‘노력’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한 것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볼 시간 조금만 쪼개서 이완배 기자의 <삶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을 보세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현명해지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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