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윤레 소설가

작년 이맘때, 딸아이가 페이스북에서 <무료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에 당첨이 됐다고 좋아했다. 무료라니 좀 미심쩍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다 자란 뒤에 찍은 가족사진이 없어서 그냥 찍기로 했다. 메이크업과 의상대여까지 다 무료로 해주니 흰 티셔츠에 검정바지만 입고 정해진 날에 스튜디오에 오라고 했다. 가족 네 명의 스케줄을 어렵게 맞추고 강아지까지 새 옷을 입혀 집을 나서니 마치 소풍가는 것처럼 즐거웠다.

경기도 외곽에 있는 스튜디오는 찾기 힘들었다. 어렵게 찾아간 스튜디오는 굉장히 넓었다. 입구에서부터 정장을 차려입은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대기실에는 턱시도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서너 팀의 가족들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촬영 중인 가족들의 경쾌한 소리로 마치 축제에 온 기분이었다.

분장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아주 상냥하게 말했다. “피부가 하얘서 화장을 얇게 해도 되겠어요.” 그러더니 화장품을 이것저것 푹푹 찍어서 하얗게 분장을 하기 시작했다. “와! 속눈썹이 길어서 안 붙여도 되겠는데요.”

뭐 속눈썹이 안 붙여도 될 정도로 길다고? 그러면서도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왜일까? 분장이 끝나자 헤어디자이너가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파마한지 일 년이 지나도록 내버려둬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얼굴이 작아서 올림머리를 하면 예쁘겠다고 한다. 달덩이처럼 부풀어 오르다 못해 처지기 시작한 넓적한 얼굴 보고 작다고? 거울을 보았다. 하얗게 분칠한 보름달이 웃고 있었다.

직원들의 언어의 온도는 따뜻하다 못해 마약처럼 황홀했다. 머리 올리지 말고 그냥 늘어뜨려 주라고 하자 “머리를 올려야 이쁜 목선이 다 드러나죠”한다. 참았던 웃음이 터졌다.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쳐다본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말이 참 많네요. 듣기 싫지는 않지만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호호호.”

머리 손질까지 다 끝나자 웨딩드레스를 고르라고 했다. 밴드나 카톡 프사에 리마인드 웨딩(remind wedding)이라며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을 올리는 친구나 지인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용감해 보이기도 하며 참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막상 드레스를 고르니 쑥스럽지만 재미있었다. 웨딩드레스는 레이스가 목까지 올라와 턱살을 가려주고, 레이스가 폴폴 날려 허리까지 가려주는 걸로 골랐다. 입어 보니 동화 속에 나오는 계모가 공주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직원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른 옷을 골라주었다. 민소매에 레이스가 별로 없고 심플해서 인어공주처럼 몸매가 다 드러나는 드레스였다. 절대 못 입는다고 버팅기자 직원은 말했다.

“목선이 예뻐서 이렇게 파인 것을 입어야 돼요. 팔 살도 별로 없는데. 허리는 걱정 마세요. 날씬하게 조여 줄 테니까. 그러려면 레이스가 없어야 더 날씬해 보이거든요.”

영혼 없는 말, 입발림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 안도가 됐다.

촬영이 시작됐다. 근사하게 꾸며진 방마다 옮겨 다니고 옷도 갈아입으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 강아지마저 모델처럼 포즈도 잘 취하고 귀여웠다. 직원들이 어찌나 친절하고 유머러스한지 피곤한 줄도 몰랐다. 촬영이 끝나자 직원은 컴퓨터 화면으로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 중 딱 한 장만을 골라 노트만한 크기의 나무 액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무료 이벤트라고 했다. 액자 크기와 재료에 따라 금액이 올라가고 파일 원본 값은 꽤 비쌌다.

하나같이 모델처럼 나온 수백 장의 가족사진을 그대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잠깐이지만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 행복한 웃음소리가 막 들려오는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 거실에 걸어놓을 만한 크기의 아크릴액자와 파일 원본 구입에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무료 이벤트는 결국(어쩌면 당연히) 유료 이벤트가 되었지만 당했다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은 학교로,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1인 가구가 됐다. 포즈가 다 다른 열대여섯 장의 가족사진을 코팅해 아이들이 떠난 빈 방에, 가방 속에 넣어주었다. 혼자 있어도 늘 가족이 같이 있음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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