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혼자되신 지 오래됐습니다. 얼마 전부터 만나는 분이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혼자 고생이 많으셔서 이제 재미있게 사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남편이 대놓고 싫은 티를 냅니다. 제가 중간에 낀 것도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습니다.

 

A. 어려운 문제네요. 책을 읽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남편께 추천하는 소설 한 편이 있습니다.

우선 상상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작은 시골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밤 열 시가 지나면 비닐봉투를 든 남자가 집을 나옵니다. 자기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살피며 앞집으로 들어갑니다. 문을 열면 슬립 가운을 입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봉투에는 뭐가 들어있을까요? 그 안에는 잠옷과 칫솔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려고 준비한 물건들이죠. 묘합니다. 더 상상하면 19금이 될까요? 이 커플은 손도 잡지 않고 침대에 눕습니다.

이 연인 아닌 연인은 누워서 잠이 들 때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합니다. 암에 걸린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자와 큰 딸을 잃은 여자는 침대 위에서 살아온 시간을 서슴없이 풀어놓습니다. 이 둘이 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옷고름이지요. 몇 날 며칠을 아니 몇 주를 동네에 소문이 다 퍼질 때까지 밤마다 비닐봉투를 든 남자가 그녀의 침대로 스며듭니다. 창밖으로 은은하게 비추는 불빛에 그녀의 하얀 어깨를 보는 것. 그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호사입니다. 이 장면의 연출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뭐라고요? 무슨 뜻인지?”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 된 지도 너무 오래 됐어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눈빛이었다. “아무 말이 없군요. 내가 말문을 막아버린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우리는 이 싱글 남녀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제인 폰다, 남자는 로버트 레드포드입니다. 70대의 사랑입니다.

제 경우겠지만 이 소설은 단숨에 읽었습니다. 2시간 동안 책에 빠졌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운과 울림은 2박3일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하드보일드식 서술, 짧은 단문과 쉬운 단어, 문장의 아름다움. 70대의 은빛 로맨스는 모든 세대에게 아련한 설렘을 가져옵니다.

‘에디의 방에 돌아온 루이스는 창밖으로 손을 뻗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만져보았다. 그리고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자신의 젖은 손을 갖다 댔다.’

소설 속 아름다운 사랑은 언제나 곤란한 현실을 만납니다. 현실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갈등도 있습니다. 이웃의 시선, 자식들의 반대, 내일을 알 수 없는 70대의 건강. 이들의 사랑은 쉬운 결론으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가족이란 의미, 사람들의 시선, 도덕적인 관계 등 꽤나 생각해볼 문제를 던집니다. 그래도 이들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걸 다 얻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대요? 혹시 있대도 극소수일 거예요. 언제나 마치 눈먼 사람들처럼 서로와 부딪치고 해묵은 생각들과 엉뚱한 오해들을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거예요.”

일흔 생을 살아도 타인의 눈을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사람의 일이겠지만 그 시선에 남은 생을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것도 사람의 일일까요?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입니다. 청소년, 노인, 아이, 여성, 남성, 아빠, 엄마. 이런 말들은 사실 사람 안에 포함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의 대부분은 노인으로 혹은 아이로 아빠로 여성으로만 살게 됩니다. 2시간 정도 시간을 내면 달빛 흐르는 아름다운 베드 스토리를 읽으며 삶의 또 다른 기회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참, 남편 분께는 억지로 읽게 하지 마세요. 그냥 식탁이나 침대 근처에 툭 던져 놓으세요. 시키면 도망가는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전미 베스트셀러 <플레인송>의 저자, 켄트 하루프의 유작 소설 Our Souls at Night <밤에 우리 영혼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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