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TV에서 하는 ‘선을 넘는 녀석들-한반도편’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출연자들이 여행하는 것을 보며 가볼 곳을 정하기도 하고 설민석 쌤한테 역사를 배우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여행의 재미와 역사의 교훈을 같이 얻을 수 있는 책이 있을까요?

A. 저도 ‘선을 넘는 녀석들’을 봅니다. 역사라는 것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제주 4.3 민중항쟁을 보면서 억울하게 죽은 제주도민에 감정이입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여행도 역사도 느낌이 살아있는 현장입니다.

작가들은 이 경험을 모아서 작품의 현장감을 살려냅니다. 특히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경험한 작가들은 당연하다는 듯 명작을 쏟아냅니다. 스페인내전에 참가한 후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황석영의 많은 소설은 역사현장에서 출발했습니다. 베트남전 참전 이후 <무기의 그늘>을 썼고 <손님>과 <바리데기>는 그의 방북과 유럽 여행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도 비슷합니다. 안타까운 건 분량입니다. 총 760 페이지의 책입니다. 질려서 못 읽을 수도 있지만 개인의 여행 경험을 쉽게 써내려 간 책입니다. 부제를 보면 책의 분량을 인정하게 됩니다. ‘7대륙 25년의 기록.’ 이렇게 따지면 7600페이지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책의 작가는 1988~1993년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 개방을 하거나 붕괴될 때는 소련 그리고 러시아, 중국을 여행했습니다. 1993~1996년에는 인종분리정책에 저항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예술가들을 만납니다. 그 이후 미국, 터키, 몽골, 그린란드, 세네갈, 일본, 르완다, 리비아, 남극, 브라질, 가나, 루마니아, 미얀마까지. 그는 25년간, 일곱 개 대륙의 예술가들과 정치인들과 시민들을 만납니다. 그는 TED 강의에서 1200만 조회수를 기록한 뉴욕 컬럼비아 대학 임상심리학과 교수이자 저널리스트 앤드류 솔로몬입니다. 그리고 그의 책 <경험 수집가의 여행>입니다.

앤드류 솔로몬의 여행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유태인 묘지에서 그는 말합니다. “묘지 한가운데에는 이 지역에서 끌려간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유대인 5000명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었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쟁 지역도 취재해 보았고 빈곤한 사회도 취재해 보았지만, 그래도 그곳들은 늘 본질적으로는 나와는 다른 곳이라고 느꼈다. 반면 이곳은 충격적일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들처럼 살다 죽을 수도 있었다.” 역사 속에서 자신을 대입합니다.

그의 여행에는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행은 나와는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럼으로써 내가 모순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후 내가 정신질환, 장애, 성격형성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인간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단 하나의 존재 양식만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명의 연장이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여러 삶의 양식을 인지하고 인간 심리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 도움을 받습니다.

얼음의 땅 그린란드에서는 우울증을 견디는 사람들을 스케치합니다. “역경이 삶의 표준인 세상에서는 삶의 고난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는 상태와 우울증을 나누는 경계가 그렇지 않은 세상과는 다르기 마련이다. 내가 일리마나크에서 만난 가족들은 침묵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역경을 견뎌왔다. 침묵은 실제로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이었고, 덕분에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춥고 긴 겨울을 무수히 견뎌 왔다.” 현대인을 위협하는 정신과 질환인 우울증의 치료법은 보통 ‘대화’입니다. 하지만 삶의 환경에 따라 침묵도 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여행만이 주는 배움인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을 학자로 만든 학교보다 자신이 여행한 세상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솔로몬의 애정과 함께 당장 떠날 수 있는 용기인 것 같습니다. 용기 없는 공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면 배우지 않습니다. 공부는 낯선 것과 마주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움은 도전과 모험입니다. 여행의 용기와 배움의 도전은 그래서 같은 길 위에 있습니다. 여행과 배움의 길을 따라 과거로 올라가는 것이 역사 아닐까요? 여러분이 여행 중이라면 이미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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