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희 서울시립대 교수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적으로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평가받지만, 지방자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얼마 전 정부가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에 대한 발표를 했다. 정부는 1988년 이후 무려 30년 만의 전부개정이며, 실질적인 지방분권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중앙정부가 지방 시민의 삶과 관련 있는 거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분권화 논의가 진행 중인 이참에 중앙정부는 국가안보와 외교 분야만 담당하고 나머지 권한 대부분을 지방정부로 이양해야 한다.

강력한 중앙집권제 전통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가 성공적으로 전면적 지방자치를 도입한 것이 좋은 참고사례다. 1981년 사회당의 미테랑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고 전면적인 지방분권화를 추진했다. 그는 1982년 ‘지방정부의 권리와 자유에 관한 법’을 도입하고, 후속 입법을 통해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인력, 조직은 물론 재정권까지 지방정부에 넘겼다. 지방정부에 대한 재정통제와 행정감독권(tutlees)은 아예 폐지했다.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질병인 파리 일극집중(一極集中)도 완화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게 된다. 제조업 일자리가 단 한 개도 없었던 소외지역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유럽 최고의 실리콘 밸리로 급성장한 것도 이 지방자치제 도입 덕이다.

지금의 프랑스는 유럽 최강국인 독일, 영국에 버금가는 모범적인 국가가 되었다. 독일과 영국은 이미 연방제였고, 강소국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도 연방제 국가다. 스페인과 이태리도 얼마 전에 연방제를 도입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국가의 성장엔진이 거의 식은 우리에게 지방 분권화의 필요성은 정말 절박하다.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보궐선거로 시장에 당선된 후 한강 노들섬의 오페라하우스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이 부지를 서울 시민들에게 농사용 텃밭으로 분양했다. 시장 후보시절 도시농업육성을 약속했던 박 시장이 추진한 일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중앙정부(당시 국토해양부)가 서울시에 이 텃밭사업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상에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할 일이 없기에 지자체의 자그만 섬 토지이용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양평군이 포함된 자연보전권역 사례도 하나 다를 바 없다. 중앙정부가 해당 양평군민들의 의사를 물어본 적 없이 일방적으로 지정했다. 이 제도는 지역주민들의 삶과 지역경제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지역주민의 동의 없이 토지용도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도입하지 못한다. 재정이나 토지이용 관련 권한은 대부분 지방정부가 가진다. 스위스는 연방정부에 교육부조차 없지만, 공교육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다. 재정, 토지, 주택, 환경 등도 마찬가지이다.

미국도 토지이용, 주택, 교육 등이 기본적으로 지방정부의 권한이다. 필자가 살았던 시애틀 교외도시의 중학교는 4학기(Quarter)제, 고등학교는 3학기제(Tri-Semester)였다. 주정부도 연방정부도 시킨 적이 없으며, 이것이 좋은 제도라고 주민들이 투표로 원했기 때문에 도입된 것이다.

지금 필자가 사는 동네의 지방의원이 누구인지, 투표는 했지만 솔직히 잘 모른다. 필자의 무관심이 원인일 수 있으나 그만큼 지방의원의 역할이 시민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이지만, 지역별로 모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잘 아는 지방정부가 지역민과 함께 스스로 살림을 꾸리게 해준다면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질 것이다. 지방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도 크게 올라갈 것이고, 풀뿌리 민주주의도 발전할 것이다. 지역사회, 문화, 경제의 발전은 당연히 뒤따라온다. 분권화는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기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부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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