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사랑모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을 좋아하는 조안면과 양평에 살고 있는 분들이 중심이 된 모임입니다. 이 모임의 회장인 김남기 선생이 다산 선생이 유배가 풀린 해배 200주년을 기념해 다산초당에 도착한 10월22일(음력 9월14일)을 기념하는 기고글을 보내왔습니다. 2회에 걸쳐 전문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김남기 다산문화교육원 이사장

정약용 선생의 근본정신은?

사람들이 흔히 정약용 선생을 ‘경세가’라 생각하지만ᆢ 선생은 국민을 잘 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는 말(末)에 지나지 않으며, 본(本)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해 스스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공함으로써 (克己復禮·극기복례),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선생이 회갑을 맞이해 ‘스스로 쓰신 묘지명(自撰墓誌銘·자찬묘지명)’에 보면ᆢ 지금까지 경집(經集) 232권을 지었는데 인(仁)과 서(恕) 이 두 글자를 위해 썼다고 하셨습니다.

선생의 저서 '논어고금주'에 보면 仁이란 “人與人之 盡其道(인여인지진기도)”'라 해 한사람이 상대에게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했고, 仁을 행하면 덕(徳)이 되는데 부모에게 행한 것을 효(孝)라 하고, 형제에게 행한 것을 제(弟)라 하며, 자식에게 행한 것을 자(慈)라 하는데,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으로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기 쉬우므로 의(義)로 다스려야 하지만, 부모 형제에 대한 孝(효)와 弟(제)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친구를 사귈 때에는 ‘부모에게 효도 하는지?’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지?’를 꼭 살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덕목은 義(의)요 어머니의 덕목은 慈(자)이며, 형의 덕목은 友(우·따뜻함)이고 동생의 덕목은 恭(공·공손함)이며, 자식의 덕목은 孝라 해 이 모두를 5교라 했는데ᆢ 이를 수신ㆍ제가ㆍ치국ㆍ평천하로 확장해,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그 도리를 다 한다면 관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서(恕)란 무언인가?’ 仁을 이루는 인술(仁術)로서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으로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우하고, 내가 주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나도 꼭 갖고 싶은 물건을 주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서(恕)로써 인(仁)을 행함에 있어서, 하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아무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도 몸을 삼가고 <계신戒愼>, 두려움<공구恐懼)>을 갖는 신독(愼獨)으로 행해야 하며,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만이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중용(中庸)의 참뜻을 이해하고 노력 한다면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생색내지 않고 진심으로 행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우리 모두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으로 살아가면서 이 땅의 후손들이 잘살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정약용 선생이 구상한 정의로운 사회는?

J.Rawls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 유리한 조건을 자신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조건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한에서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했고, 그럼으로써 차별 속 평등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모든 재화의 생산은 사회적 협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과 보다 나은 환경에서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나고 질 높은 교육을 받은 것도 행운인데, 그로 인해 몇 십 배 나아가 수백 배의 보상을 받는다면 이는 ‘이중적 보상’으로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18C말~ 19C초의 유학자 다산선생의 정의 관념은 어떠할까요? 다산선생도 차별이 존재할 뿐 아니라 차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목민심서 예전(禮典) 육조의 ‘변등(辨等)’조항에 보면 사람의 부류에 귀천이 있고 귀천 간에 마땅히 등급을 구별해야만 하며, 세력에도 강약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한쪽이라도 없앨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산이 말하는 차별이란 물려받은 세습적 지위나 이에 근거한 귀천의 구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조직하고 운영함에 있어서 위계에 따르는 일정한 신분 등급의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날에도 같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다산이 내세운 사회적 신분 등급의 구별 기준은 무엇일까요?

네 가지가 있는데 친친(親親), 존존(尊尊), 장장(長長) 즉 노노(老老), 현현(賢賢)이며, 이를 지키는 것이 인(仁), 의(義), 예(禮), 지(知)라 했습니다.

친친이라 함은 가까운 친속을 사랑하는 것이고, 존존은 벼슬을 가진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는 것이며, 장장은 연장자를 어른으로 모시는 것이고, 현현은 어진 사람을 어질게 대우하는 것으로 ‘혈친 간의 친소(親疎)관계’ 외에 ‘벼슬’과 ‘나이’와 ‘덕행[孝弟]’ 이라는 삼달존(三達尊)을 보편적 구별 기준으로 제시했던 것입니다.

다산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란 목민심서 등에서 언급했듯이 ‘벼슬한 자는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수신(修身)을 이룬 후에 치인(治人)의 역할까지 병행해야 한다’고 했는데ᆢ 나아가 친족의 어른과 지역의 연장자 그리고 현자들이 모범을 보이면서 사람들을 계몽하고 교육해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교화의 대상인 사람들과의 엄격한 분별을 강조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선생이 꿈꾸었던 것은 5敎 [아버지의 의(義)와 어머니의 자(慈), 형의 우(友:따스함)와 동생의 공(恭:공손함) 그리고 자식의 효(孝)]가 확대돼 펼쳐지는 아름다운 사회,ᆢ 그리하여 예(禮)가 주가 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형벌로 다스리는 예주형보(禮主刑補)의 사회였습니다. 한마디로 논어 위정편과 자로편에 나오는 이런 사회였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백성들을 행정명령 [政]을 통해서 지도하고 형벌 [刑]을 통해서 강제하면 그들은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 죄만 짓지 않으려할 뿐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오히려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백성을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써 규율한다면 그들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복종하게 될 것이다.”<위정편>

“공자가 말했다.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민중들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를 잘 지키면 민중들이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신의를 잘 지키면 민중들이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사방에서 민중들이 제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찾아올 것이다.” <자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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