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순천향대교수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유례가 드물게 국민 대다수가 아파트라는 대단위 초밀집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나라이다. 말 그대로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아파트 공화국>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이제 한 세대에 불과하다. 1980년대 중반만하더라도 대한민국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13.5%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그 비율이 늘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 값이 급상승하자 정부는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아파트를 더 짓겠다고 밝혔다.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대세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거주자의 입장에서 아파트는 장점이 많은 주거양식이다. 단독주택보다 편리하고 안전하며, 보수유지가 거의 필요 없고, 사고팔기에 편리한 재산증식의 수단이다. 정부입장에서는 급격한 인구이동으로 인한 주택부족을 손쉽게 해결하는 수단이다. 60년대부터 본격화된 수도권 인구집중에 대처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적극적인 아파트 건설정책을 추진했고, 민주화 이후에도 아파트위주의 주택보급정책은 변함이 없었다. 부유층의 투기장으로 전락한 지금의 서울 강남은 역대 정부의 합작품이다. 

한국인의 집단적 성향과 서구문화에 대한 편견도 아파트 공화국 건설에 일조했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했던 문화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양인들에 비해 집단주거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다. 아파트가 현대적 서구문화라는 선입견도 도시인들에게 아파트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집=아파트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구의 절반인 대한민국 남자들이다. 한국 대다수 남자들에게 아파트는 평생 함께해야하는 업보나 다름없다. 20대 남자들은 자신의 아파트를 마련하지 못해서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 30⋅40대 남자들은 아파트 구입하느라 진 빚에 짓눌려 허리를 펴기 힘들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50⋅60대 남자들에게 내린 아파트의 저주에 대해서는 아직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한국의 50-60대 남자들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위해서 그들의 인생 전부를 희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대이다. 그야말로 아파트 공화국 건설의 주역이다. 어린 시절을 초가집, 판잣집에서 보내고, 결혼과 더불어 도시의 단독주택 셋방살이로 시작했고, 이제야 대출금 다 갚고 진정한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가진 것이라곤 달랑 아파트 한 채 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들에게 아파트의 저주라니 무슨 말인가? 

그 이유는 아파트는 남자가 필요 없는 새로운 주거양식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남자는 인간 생존의 기본조건인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거주의 책임을 맡았다. 여자는 옷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하는 대신, 남자는 집을 짓고 지키고 보수하고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결혼시 남자에게 집을 마련하길 기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래서 남자에게 집은 거주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남자에게 집은 자신의 정체성과 남성성을 보여주고 발휘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아파트는 남자의 손길이 필요 없도록 설계된 주택이다. 남자들의 역할은 아파트를 사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것뿐이다. 집안에서 형광등 한번 갈아본 적 없고, 벽에 못 한번 박아 보지 못한 남자들이 적지 않다. 그런 그들이 퇴직을 하는 순간, 즉 집을 장만하는데 필요한 돈을 버는 기능이 정지되는 순간, 그들은 직장에서만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아파트 공화국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대한민국 남자들이지만, 거기에는 그들이 편히 머물 공간도 없고, 남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공간도 없다. 아파트를 사거나 빌릴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는 청년 남자들, 아파트를 장만하는데 일생을 바쳤지만 자기 아파트에서조차 소외당하는 중장년 남자들로 가득한 대한민국이다. <아파트 공화국> 남자들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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