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꿈 배낭 봉사단’ 및 실무자 31명은 지난 2일부터 11박12일 일정으로 캄보디아에서 해외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봉사단원으로 참가한 안상윤, 김건우 학생의 기고글을 소개한다. 지면관계상 일부 내용을 편집했다.

 

‘세상 밖으로 꿈 배낭 봉사단’은 지난 2일부터 12일간 캄보디아에서 해외봉사활동을 했다. 맨 뒷줄 오른쪽 첫 번째 안상윤, 두 번째 김건우.

‘별을 향해’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봉사단 지원 포스터를 보게 된 것, 1차 모집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2차 모집에 지원해 합격한 것, 캄보디아로 날아가 일면식 없는 타국의 아이들과 교감하게 된 것, 모든 것이 우연의 연속이었다.

8월2일 캄보디아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회상해보았다. 우리 봉사단이 창단된 순간부터 1박2일의 워크숍, 교육봉사 준비를 위한 조별 모임 등, 이 모든 순간들이 단 한 번의 시간을 위해 있었음을. 비행기가 착륙하고 우리는 한 번의 시간 앞에 서게 됐다.

교육봉사가 진행되기 전 밥퍼봉사와 쉼터 제작을 하면서 단원들은 현지 아이들과 교감했다. 그와 동시에 단원들 스스로도 자발적인 모습과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교육봉사 하루 전. 반테이 민체이 주에서 간단하게 교육시연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땐 30~50명의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 했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우리에게 보인 것은 200여명의 아이들이었다. 당황하지 않았다면 신이 내게 거짓을 고했다고 벌하겠지. 예상한 것 보다 많은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게 되니 원래 준비했던 멘트들이 입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2시간의 수업 시간은 혼란하던 내 머리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후 진행된 망고나무 심기에선 앞에서의 내 실수를 만회하고자 좀 더 노력한 듯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오늘의 과오와 내일 있을 교육봉사에 대한 준비를 강화하고자 조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가고 교육봉사의 날은 밝을 준비를 마쳤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가르치는 대상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면 난이도는 급격하게 상승한다. 그럼에도 단원들은 준비했던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전하려 노력했고, 동시에 아이들과 좀 더 많은 교감을 나누려고 노력했다.

수업을 위해 들어간 교실에선 물비린내가 올라왔고 바람 하나 통하지 않는 교실은 열기로 가득했다. 교실은 전등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빛이 있어도 없는 듯 했다. 그럼에도 단원들은 빛이 되고 바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현지 아동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종이를 접고, 그림을 그리고, 풍선과 클레이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걸 가능케 한 것이 우리 단원들이었다.

한 명의 아동도 뒤처지지 않도록,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는 지켜보고 교감했다. 수업이 끝난 후엔 자체 피드백을 통해 그 날의 아쉬움과 실수를 극복해 다음 날의 거름으로 사용했다. 점점 우리는 그 때 심었던 나무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교육봉사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고, 아이들과 함께 배운 춤을 추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단원들이 준비한 춤을 발표했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제 여러분과 인사할 시간이 왔어요. 그동안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워요.”

눈물이 나려는 걸 억지로 참고 참았다. 현지 학생이 우리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었다.

“5일 동안 너무 즐거웠어요. 건강하시고 부자 되시길 바랄게요.”

그날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행복한 모습을 보여줘야 서로 행복한 마지막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밖을 바라보았다. 캄보디아의 밤은 마치 하늘의 별이 땅에 박혀있는 듯 반짝였다. 마치 캄보디아에서의 날들이 다른 행성, 다른 별로 떠난 것이었고 이제는 돌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좋은 기회가 내게 주어지게 되었다는 삶의 우연성에 감사하고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과 그들의 미래가 밝길 바란다. 봉사단이 ‘꿈배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우리의 꿈과 희망을 가방 가득히 담아 그곳의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의 행복을 함께 담아 돌아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안상윤 봉사단원

 

‘끄로바이리엘’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화 전파, 책가방 제작, 아트풍선 교육을 실시했다.

나의 생애 첫 해외 봉사

 

나의 생애 첫 해외 봉사인 꿈배낭 해외봉사는 캄보디아로 떠나게 됐다. 서류 지원부터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문자를 받고 발대식과 워크숍 그리고 준비기간, 8월2일부터 13일까지 길고 긴 봉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보다는 “내가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날씨는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던 출국 날은 모두들 들떠 있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고 나서의 첫 느낌은 한국이 너무 더웠던 때문인지 부는 바람이 정말 시원하게 느껴졌고 봉사단원들을 반겨주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첫날 우리 봉사단은 시엠립의 교육청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교육청 관계자들의 응원으로 봉사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봉사는 다일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밥퍼봉사에서 시작했는데, 또 다른 봉사단이 마지막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교육을 받고 위생봉사와 밥퍼봉사로 나눠 일했는데, 나는 음식 손질과 식판 배식을 담당했다. 봉사를 마무리하는 도중 남은 음식을 나눠달라는 현지 아이들과 엄마들의 모습을 보며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둘째 날은 오전 수업을 진행할 끄로바이리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쉴 쉼터 제작을 진행했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었지만 모두들 삽질과 벽돌을 옮기는데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서 더 열심히 참여했다. 현지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빨리 공사를 끝낼 수 있었고, 우리가 만든 쉼터를 학교에 갈 때마다 뿌듯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셋째 날은 반떼멘쩨이에서 아트풍선 교육봉사와 망고나무 심기를 진행했는데, 나와 윤호는 아트풍선을 맡았기 때문에 다른 조원들보다 더 먼저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의사소통의 벽이 크게 느껴져서 힘들었고, 예상보다 아이들이 많이 와 풍선이 부족했다. 더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먼저 수업을 진행해 보았던 것이 이후 많은 도움이 됐다. 수업이 끝난 후 망고나무를 50그루 심었는데, 땅을 파고 흙과 물을 나르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도와주겠다고 해 감동을 받았다.

9일은 아이들과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클레이로 나무와 장미를 만들어 손거울에 붙였는데 아이들이 남은 클레이로 선물을 만들어줘 감동했고, 작품을 척척 만드는 아이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댄스수업은 아이들이 단체로 춤을 맞춰보기도 하고 따로 발표를 시켜보기도 했다. 물론 내가 메인교사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춤을 맞춰서 끝까지 출 때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10일은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학교에 가서도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 했다. 특히 오전반은 아침부터 시험을 보는 바람에 인사할 시간이 더욱 줄어 아쉬웠고, 오후반은 전시회가 따로 없어 아쉬웠다.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선물을 건네주고 편지도 주었을 때 내가 줄 것이 없다는 것이 씁쓸했다. 한 아이가 내년에 또 오냐고 물었을 때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슬펐다. 내가 땀을 닦는 것을 보고 내가 우는 것으로 오해한 아이가 울었다. 길 것만 같았던 시간이 정말 짧은 시간이었고,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정들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빵과 기부 받은 옷가지 등을 선물로 건네주고 돌아서는데 시원섭섭한 느낌에 그날 내내 기분이 뒤숭숭했다.

캄보디아에 있던 내내 마음이 자유로웠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정말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까지 정말 감사드리고, 한 번 더 꿈배낭 봉사 단원들에게 사랑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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