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바꾸려면 이렇게④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조례

지난해 12월 열린 ‘제5회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콘테스트.’ 271개 마을 중 123개 마을이 지역만들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례는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 법령의 범위 내에서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한 법이다. 이 조례에 근거해 예산이 배정되고 구체적인 사업이 추진된다. 주민이 어떤 일을 지자체에 요구할 때 “조례에 근거가 없어 불가능하다”는 관계자의 답을 듣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례의 발의는 지방의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있다(지방자치법 제58조). 대개 의회의 권한, 조직과 운영 등에 관한 조례안은 의원에 의해 발의되고 집행기관의 조직, 운영 등에 관한 조례안은 지자체의 장에 의해 제출된다.

자자체는 공보나 신문, 방송 등 전체 주민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조례안의 취지와 주요내용을 입법예고해야 하는데(행정절차법 제41조) 양평군은 군청 홈페이지의 ‘입법예고’를 통해 10일간 고시하고 있다.

그런데 지방자치의 입법절차인 조례제정이 충분한 주민 홍보와 공감 없이 진행될 때도 있어 문제다. 이미 제정된 조례가 주민 의사와 반할 경우 주민이 개정이나 폐지(지방자치법 제15조)를 청구할 수 있다. 대도시(인구 50만 이상)는 19세 이상 주민 총수의 100분의1~70분의1, 시·군 및 자치구는 50분의1~20분의1의 연서(連署)가 필요하다. 양평의 경우 지난 6·13지방선거 유권자(9만8582명)를 기준으로 하면 1972~4929명의 연서가 있어야 조례를 개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쉽지 않은 만큼 조례를 통한 법제화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양평군 주민참여 및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기본조례’

형식적인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지방의회와의 사전협의도 없이 속성으로 진행한 대표적인 조례가 지난 4월 전부개정된 ‘양평군 주민참여 및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기본조례’다. 김선교 전 군수는 임기를 불과 2달여 남긴 시점에서 자신의 군정 5대 핵심과제였던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사업’을 조례로 제정했다.

‘제251회 양평군의회 임시회’에 상정된 ‘양평군 주민참여 및 지역만들기 기본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에 대해 제7대 양평군의원 대부분은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박현일 의원은 “지난 사업을 평가하고, 차기 군수 예우차원에서 (다음으로) 넘기는 게 맞다”며 “임기 말에 조례를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만기 전 군의원도 김선교 전 군수의 임기가 끝나고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회와 토론을 반복한 우여곡절 끝에 파견 공무원도 센터장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 제31조만을 수정한 채 조례는 원안대로 통과됐다.

 

◇‘행복공동체’가 뭐지?… 주민 의견부터 물어야

양평군은 지난 2014년 9월 벽화 그리기와 화단 조성 등 군주도의 획일적인 사업으로 지적 받아온 ‘지역만들기’사업을 개선하겠다며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마을 역량을 등급별로 구분해 지원·육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지역만들기 사업이 진정한 주민 주도로 되기 위해서는 조례의 목적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양평군 주민참여 및 지역 만들기 기본 조례’의 목적은 ‘주민의 행정참여 활성화’에 기반을 두고 있어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가는’ 타 지역의 마을만들기와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군은 4년 뒤인 지난 4월 ‘양평군 주민참여 및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기본조례’로 기존 조례를 전면개정하며 지역공동체의 상(象)을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로 사실상 특정했다.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개념의 이론제공자로 알려진 사람은 정도훈 한국역량개발원장이다. 본지는 군의 지역만들기 사업이 타 지자체와 어떻게 다른지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5년 5월12일부터 8회에 걸쳐 정 원장의 기고글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기고글에서 “수많은 사회문제들을 해결해 후손들에게 살 맛 나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마을공동체는 반드시 회복돼야 한다”며 방법론으로 ‘생활공동체’, ‘학습공동체’, ‘경제공동체’, ‘나눔공동체’의 단계별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생활공동체’는 마을공동체 운영을 위한 정관을 구비하며 마을법인을 설립한다. 이장 등으로 구성된 마을 임원회의를 정례화해 민주적인 절차를 생활화하고, 주민들이 마을 일에 관심을 갖도록 마을청소 등 환경개선사업 등을 함께한다. ▲‘학습공동체’는 취미·건강·기술 등의 학습모임을 만들어 마을 일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경제공동체’는 마을 기초체력을 다진 후 주민간의 협의를 통해 마을 형편에 맞는 소득사업을 추진하고, ▲마지막 단계인 ‘나눔공동체’는 소득사업으로 조성된 마을기금으로 나눔을 실천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자는 내용이다.

정 원장의 단계별 마을 설정은 위 조례 제13조에 ‘새싹마을’ ‘뿌리마을’ ‘기둥마을’ ‘열매마을’ ‘행복마을’로 구체화됐다.

주민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업 목표에 대한 주민의 공감과 지지가 필수다. 지역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이라면 더욱 당연하다. 하지만 지역민도 아닌 개인 연구소를 운영하는 정 원장이 기본틀을 제시한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는 이론적 검증은 물론 주민의견 수렴이나 공론화과정이 전무했다. 대개 이런 상황에선 군이나 행정 주도가 아니면 지속적인 추진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김 전 군수 퇴임 이전에 급히 조례개정을 추진한 것 또한 이런 우려 때문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

송요찬 의원은 임시회에서 사업결과에 대한 주민평가 내용이 수치화된 게 있느냐고 물으며 “(지역만들기 주체, 단계 등) 다음 군수가 이어갈지 수정할지 이런 부분인데 틀에 박히게 전부 개정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신동원 전략기획과장은 “조례이름을 ‘지역만들기’에서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로 바꾸면서 이를 반영했고 중간지원조직 설립이 시급해 전부개정을 추진했다. 관에서 어느 정도 끌고 가야 한다”고 답해 이런 현실을 드러냈다.

 

◇외부기관 의뢰해 정확한 평가·진단해야

현재 군의 계획대로라면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사업에 들어갈 예산은 향후 5년 동안 100여억원(매년 20여억원)이다. 마을에 대한 사업비 지원은 등급별로 이뤄지는데 ‘새싹마을’ ‘뿌리마을’ ‘기둥마을’ ‘열매마을’ 등으로 구분해 500만∼3000만원을 지원한다.

마을 등급은 매년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콘테스트를 열어 심사한다. 그런데 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정 원장이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박명숙 전 군의원은 임시회에서 “대부분의 마을 교육과 컨설팅을 정 원장이 담당하는데 본인이 컨설팅한 것을 본인이 심사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대로라면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떠나 심사를 위한 지역만들기 사업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비판을 수용해 군은 올해부터 컨설팅 인력을 20명으로 확대하고 마을에서 직접 인선하도록 하고 있지만, ‘정도훈 원장 초청 세미나’ 현수막까지 걸리는 마을이 있는 걸 보면 현장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전 군수의 핵심사업이었던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토대로 민선 7기에서 이 사업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해야 한다. 정동균 군수 인수위원회는 사회적경제와 연관한 사업추진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에는 외부전문가에 의한 정확한 진단과 평가뿐 아니라 그동안 생략돼온 주민 의견 청취 과정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새마을운동과 닮은꼴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은 공동저서 <우리는 마을에 산다>에서 초등학교 때 경험한 새마을운동을 추억하며 요즘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해 우려했다. 여러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마을만들기는 주민의 자발적인 운동이 아니라 자치단체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고,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개요나 진행방식에서도 새마을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새마을운동 당시 정부는 전국 3만4665개의 행정리를 기초마을, 자조마을, 자립마을로 분류했다. 등급화는 마을 사이에 경쟁을 촉발시켰고, <새마을운동 30년 자료집>에 따르면 1972년에 7%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자립마을은 1979년 무려 97%에 이른다. 7년 사이에 그만큼 살만한 마을이 된 것일까?

양평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등급별로 이뤄진다. 대개 씨앗마을(양평은 새싹마을)은 마을리더 양성이 주가 되는데, 이렇게 교육받은 리더들이 사업의 중심이 된다. 교육과정을 통해 사업아이템을 만들고, 실행계획서를 작성해 사업비를 지원받고, 승급에까지 영향을 미치니 찍어낸 듯 똑같은 마을사업을 하게 된다.

결국 군이 제시한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의 가이드라인, 군이 제공한 교육과정이 마을 리더들의 의식과 행동을 규정할 수밖에 없다. 설사 어떤 리더가 마을 실정과 주민들이 원하는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계획을 세웠다 해도 이 가이드라인 안에서 형식화, 규격화 될 수밖에 없다.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는 과거의 새마을운동처럼 관주도로 흐를 수밖에 없다. 군 담당자들은 “관이 아니라 주민이 주체다. 관은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하지만 이대로라면 구조적인 한계를 갖는다. 교육을 진행하고 예산을 지원해도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벽에 부딪칠 것이 뻔하다.

지역만들기는 주민 모두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문제나 아주 절박해서 주변에서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마을별로 단계별 특성을 규정하고 획일화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조례에서 어떻게 마을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발전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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