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순천향대 교수

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로 떠나는 여름 휴가철이다. 전국 어디나 무덥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래서 집안에 에어컨 켜놓고 낮잠 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피서법이지만, 귀중한 여름휴가를 집안에서 보내는 사람들은 드물다. 집을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덕분에 여름 휴가철은 대한민국의 지역 간 인구 불균형이 잠시나마 교정되는 시기이다. 도시의 거리는 한산해지고, 농어촌 지역은 관광객으로 활기를 찾는다.

그런데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고통을 겪는 지역도 있다. 소위 과잉관광지로 전락한 곳이다. 서울의 북촌, 전주의 한옥마을,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들은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인해 지역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관광객들이 유입되면서 경관훼손, 교통 혼잡, 물가인상 등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치단체들이 전통적 주거지역을 한옥마을이나 벽화마을 등으로 이름붙이고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나 소음공해 등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도 아니고, 대단한 전통문화가 배어있는 곳도 아닌 주거지역에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주거문화, 즉 아파트 문화 탓으로 볼 수 있다. 공동주택 거주자에게 단독주택은(그것이 전통한옥이던 빈민가 산동네이던) 낯선 대상이고 그래서 관찰의 대상이 된다. 이웃에 포위되어 있지만, 이웃을 들여다 볼 수도 없고, 교류하기도 힘든 아파트 단지 생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주택 대비 아파트 비율을 보면 서울은 58.5%, 부산은 63.4%, 대구는 68.9%, 인천은 61.2%, 대전은 72.2%, 광주는 77.3%로 모두 서울보다 높다. 읍 단위 지역에서도 아파트 비율이 47.6%에 달한다. 여기에 오피스텔, 연립주택 등을 포함하면 소위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비율은 75%에 달한다.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편리함이다. 그러한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고 혹은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한옥마을과 벽화마을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유럽에서 시작되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아파트 주거양식은 매우 독특한 한국의 주거문화로 정착되었다. 불과 수십년 사이에 대다수 국민들이 전통적 주거형태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주거형태인 아파트를 선택했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인류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새 것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 가옥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한국인의 특성 탓이라고 지적했다.

아파트 주거문화는 정부의 작품이다. 정부는 1970년대 한강변을 중심으로 동부이촌동 반포 잠실 등, 아파트 건설이 용이한 지역을 선택해 국가주도로 표준화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교량과 지하철 건설로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강북 구도심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이주시켜 8학군을 만들었다. 공무원, 언론인 등에게 아파트 청약 우선권을 제공하며 이주민 유입을 유도했다. 지방의 대도시들도 서울에 뒤질세라 아파트 건설에 매진했다.

덕분에 서민아파트의 상징이었던 주공아파트가 신분상승과 재산증식의 상징으로 변했다. 현재 아파트 거주자 중 50·60대는 불편한 단독주택을 버리고 편리한 아파트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한편 20·30대는 단독주택이나 마을생활의 추억이 아예 없는 세대이다.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살아온,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라 주공아파트인 세대들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불변의 진리이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반면 단독주택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뒤쳐진 소수자들의 주거지로, 생소한 관찰대상으로 전락했다. 장년층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청년층은 이국적 주거문화를 관찰하기 위해 한옥마을이나 벽화마을을 찾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이 만들어낸 독특한 휴가문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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