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좌우로 갈린 한국 정치계에 좌우합작이라는 중도의 길을 제시했던 몽양 여운형 선생은 1947년 7월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그의 서거 71주년 행사가 있은 며칠 뒤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항상 약자의 편에서 권력과 재벌에 풍자와 유머로 맞섰던 그의 죽음에 슬픔으로 목이 멘다.

양평에도 양평역 앞 광장에 그의 분향소가 마련됐다. 해맑게 웃고 있는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한동안 고개 숙여 추도를 하는데 문득 몽양 선생이 떠올랐다.

70년을 사이한 두 사람의 정치적 신념과 철학에는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입담과 유쾌한 성격은 사람을 끌어 모았고, 거기에는 이념의 구분이나 권력과 재산의 유무 여부도 없었다.

한 언론에서는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있고, 기업인도 있고, 청소부도 있고, 장애인도 있고. 노인도 있고, 어린 아이도 있고. 이런 장례식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국민장으로 치러진 몽양 선생의 장례식 또한 그랬다.

기록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2018년 7월, 우리는 또 한 명의 큰 정치인을 잃었다. 스스로 목숨을 던져야만 했던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책임감이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동아줄을 위태롭게 움켜쥔 양평에서 글로 먹고사는 팔자를 가진 이의 기자수첩에 ‘노회찬 선배님, 뒤는 걱정 말고 편히 가십시오’라고 가만히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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