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의병 항의 123주년 ‘제8회 의병의날’

 ‘제7회 양평의병의 날’ 기념식 나란히 열려

지난 19일 지평면 광장무대에서 열린 ‘지평의병 창의 123주년 제8회 의병의날 전야제’에 모인 주민들이 의병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양평은 의병의 고장이다. 일제시대 양평에서는 조선말기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인 을미의병과 1907~10년 발생한 항일구국적 군대의병 봉기인 정미의병이 큰 활약을 했다.
을미의병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분노한 이춘영과 안승우, 김백선 등이 4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면서 불붙었다. 관아의 반대를 피해 그해 11월28일 원주에서 지평의병 창의를 선포한 후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는 정신으로 원주, 제천, 단양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이후 간도와 만주로 건너가 임시정부 수립 때까지 싸움을 전개했는데 독립군, 광복군으로 편입된 후 해방 후 국군으로 이어져 국맥 지평의병으로 불린다.
양근의병은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됨에 따라 김춘수, 이연년, 최대평 등 의병장들이 용문산을 근거지로 활동한 의병을 말한다. 양근의병은 여주, 이천, 광주, 홍청, 가평 등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일본군 수비대를 유격전으로 괴롭혀 전공을 세웠다.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일명 ‘의병초토화작전’을 개시해 의병뿐만 아니라 민간인이 의병을 지원한다는 구실로 민가를 불태우고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또한 용문산의 사나사, 상원사, 용문사 역시 의병의 근거지라 해 모두 불태웠다.
이 두 의병을 기념하는 기념행사가 해마다 열리고 있는데, 올해는 지난 19일과 20일 ‘지평의병 창의 제123주년 제8회 의병의날 전야제’와 ‘제7회 양평의병의 날’ 기념식이 각각 열렸다. 
‘제7회 양평의병의 날’ 기념식은 양평의병기념사업회(회장 신교중) 주최로 지난 20일 군민회관에서 개최됐다. 식에 앞서 길놀이 의병행렬이 양평고를 출발해 군민회관까지 이어졌다. 기념식은 경과보고, 의병선양 유공자 표창, 기념사, 축사, 헌시낭송, 헌무, 의병의 노래 제창, 특송,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제7회 양평의병의 날’ 기념 의병행렬이 양평고를 출발해 군민회관까지 이어졌다.


이에 앞서 19일 오후 6시에는 지평의병정신 선양회(회장 방영수)가 주최하는 지평의병 창의 123주년 ‘제8회 의병의날’ 전야제가 지평면 광장무대에서 열려 지평의병 창의 출전을 재현했다. 주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월산리 봉미산 봉화대에 횃불을 점화한 뒤 주민자치센터 앞 광장에 모인 주민 30여명이 의병출정식을 재현했다. 지평의병정신선양회의 지평의병 경과보고와 방영수 회장의 인사말, 헌시에 이어 양평문화원 지평분원 이정훈 원장이 선창한 만세삼창으로 전야제를 마쳤다. 

두 행사 모두 양평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창의호국 및 숭고한 애국애족 의병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기 위해 열리는 행사다. 그러나 전야제나 기념식 행사에 참석했던 주민들은 기념식이 의병정신을 기리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형식적이라고 지적했다. 
매년 진행되는 행사는 식순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을 뿐 아니라, 양평의병 기념식 전야제라고 열리는 지평행사는 지평의병에만 초점이 맞춰져 양근의병과 구별하고 있다. 또 당일 행사는 ‘제7회 양평의병의 날 기념식’, 전야제는 ‘지평의병 창의 제123주년 제8회 의병의날 전야제’라는 명칭으로 개최되고 있어 군민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한 참석자는 “의병 기념식을 굳이 나눠서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눠서 하다 보니 오히려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다”며 “의병은 자랑스러운 양평의 역사다. 양평이 의향(義鄕)임을 재인식하고 선열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축제로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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