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무소속 군수 예비후보

<공통질문>

▲양평군의 미래상은… 근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양평이 가진 인프라는 훌륭하지만 정체돼 있다. 이는 군민과의 소통 부재가 원인이다. 예를 들면 군은 문화․예술 사업에서 자신들의 행사만 예산에 반영한다. 지역 예술가들이 자체적으로 하는 행사는 전혀 관심이 없다. 군 주도 행사는 없애고 민간 주도 행사에 행정적 지원만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질 높은 삶의 도시, 생활복지가 충만한 도시, 도․농 지자체의 모범이 되는 표본도시, 수도권 2500만 시민들에게 친환경 먹거리를 공급하는 도시, 관광․레저 청정도시, 문화․예술의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행정타운 구체적 공약… 행정타운 조성은 꼭, 그리고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군청 주변 상권 문제 등 이전에 따르는 각종 문제도 많다. 이를 해결하려면 100년을 바라보는 도시계획부터 수립해야 한다. 이 용역을 바탕으로 군민의견을 청취해 결정해야 한다.

김선교 군수가 11년간 왜 행정타운 이전을 못했는지 이해가지 않는다. 크게 멀리보고 추진해야 할 사업이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당선된다면 바로 추진할 생각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공직자와 토호세력이 결탁해 만들어내는 적폐부터 청산해야 한다. 양평은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지난 24년 동안 군수는 모두 공직자 출신들이었다. 공직자 출신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전직 군수가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방법으로 지역 토호세력들이 권력을 유지하며 모든 이권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다.

두 번째는 양평공사 등 혈세 먹는 하마를 잡아야 한다. 세 번째는 역시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다. 농업혁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양평공사 농산물 유통사업 해법… 우선 농산물유통과 시설관리를 분리시켜야 한다. 농산물유통은 농협과 컨소시엄 등의 방법으로 전문가의 손에 맡겨야 한다. 이렇게 해야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유통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다.

최근 군청은 양평공사에 각종 사업을 몰아주고 있는데, 이는 유통사업 문제에 대한 ‘물타기’라고 생각한다. 시설공단을 분리해 규모의 관리를 통해 예산을 절감해야 한다.

<개별질문>

▲정책분야에서 2014년 출마 때와의 차이점은… 의원을 할 때만 해도 농업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농산물 유통사업을 직접 하면서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갈수록 높아지는 땅값인데 평당 3000원짜리 벼농사를 하는 것은 안 된다. 고부가가치 계획농업을 해야 한다. 양평은 서울과 수도권에 인접한 최고의 장점이 있다. 유통시스템을 잘 개발하면 오늘 수확한 농산물을 그날 저녁 밥상에 올릴 수 있다.

농업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고령화다. 이는 외부 인력을 통해 가능하다. 즉, 기업농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는 농업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양평공사에서 이제야 짓기 시작했는데, 너무 늦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공천과정에 대한 입장은… 바른미래당은 공천과정에서 계파 간 야합을 하면서 모든 민주적 절차가 무너졌다. 만약 면접 50%, 여론조사 50%, 권리당원 300명 이상 가산점 10% 등을 적용해 진행했다면 후보자가 누가 됐을지는 자명하다. 그런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계파들이 지역별로 공천을 나눠 가졌다. 재심신청을 하라고 했지만 이런 바른미래당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자 지지자 약 1000명이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경기도당에서 이를 보고 ‘불공정 경선’이었다고 했다.

▲당적이 몇 번 바뀌었다. 당선만을 위해 움직인다는 비판이 있는데… 한나라당으로 처음 군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선거에서 도의원 신청을 했는데 정병국 의원이 이를 거부했다. 당시 정 의원이 김덕수는 국회의원 하려고 하니 안 된다고 했다. 결국 탈당해 무소속 군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갑자기 전략공천이 되면서 무산됐다. 안철수 후보와 새로운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이번 합당과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에 환멸을 느껴 내가 떠났다. 투명하지 않은 패권정치의 피해자라 생각한다.

▲지난 선거에서 네거티브가 많았고, 여전히 ‘독불장군’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지난 선거자체가 김선교 군수의 7년 평가였다. 물론 비판과 함께 대안도 제시했지만 비판이 컸던 건 사실이다. 사실 그 시기 누가 김 군수를 견제할 수 있었나. 내가 총대를 멘다는 각오였다.

‘독불장군’이라는 표현은 오해다. 기업가 출신이라 모든 결정에 앞서 항상 주변에 의견을 구한다. 내 생각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바로 고친다.

<김덕수의 인생>

1961년 양서면 복포리에서 3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했던 부모님 밑에서 가난에 찌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원래 큰형님이 계셨는데 중2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님도 몸이 안 좋아 이때부터 농사를 거들었다. 4시에 학교를 마치면 집에 돌아와 저녁 늦게까지 소꼴을 벴다. 가난이 정말 싫었고, 지게 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고교 졸업 후 1년을 농사와 공사판에서 일하다 군대에 가려했는데, 현실도피라는 생각이 들어 서울 이모내로 무작정 상경해 재수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다음해에 한양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는데 입학금이 없어 못갈 형편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먼 친척분이 학비를 내 주셨는데 당시 등록금 영수증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삶에 불만이 많았던 탓인지 대학에 가서 자연스레 학생운동을 했고, 경영학과 대표를 맡기도 했다. 동생도 대학을 가게 돼 학사장교(ROTC)를 갔다.

1988년 제대 후 섬유무역으로 유명했던 회사에 취직했다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홍콩특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섬유수출사업이 잘됐다. 한때 직원이 135명이나 됐는데 1996년 갑자기 수출길이 막히며 연쇄부도가 났다.

2001년 양평으로 와서도 주름공장을 운영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고향에 와보니 어린 시절과 변한 것 없이 어렵게 살고 있었다. 내 고향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구체화되면서 2006년 군의원 출마로 정치를 시작했다.

당시 지방선거는 중선거구제도가 도입돼 첫 정당공천이 시작된 선거로 한나라당에 쟁쟁한 군의원 후보자가 많았지만, 인물론이 부각되면서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다.

군의원에 당선된 후 첫 번째 업무보고 시간에 많은 지적을 했다. 그랬더니 형님에게 전화가 와 “주변에 덕수 욕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알아보니 그때 지적한 것을 두고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이때 기득권층과 계속 싸워야 할지, 아니면 머리를 숙이고 타협을 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결국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종합운동장과 양평공사 문제 등으로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삭발투쟁, 청와대 1인 시위 등을 벌였지만 한계를 절감했다.

군의원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결국 2012년 사퇴 후 민주당 후보로 총선에 나섰지만 갑작스런 중앙당 전략공천으로 무산됐다. 이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 탈당하고 무소속 후보로 도전했다.

<핵심공약>

▲행복한 사람들의 보금자리, 원칙이 살아있는 반듯한 양평 ▲활기찬 미래로 힘차게 도약하며 함께 사는 공동체 ▲빈틈없는 교육․사회 안전망이 가족을 지켜주는 양평 이라는 3가지 정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7대 공약이다.

1. 양평공사 시설공단으로 전환-농업유통 분야는 농협과 연대

2. 도시계획 재정립-역세권 중심 혁신 신도시 건설

3. 아이들을 위한 교육혁신도시 건설

4. 인․허가 행정시스템 혁신

5. 양평군청 인사시스템 개혁-질 높은 행정서비스

6. 2모작․작목전환으로 돈 버는 친환경농업

7. 쉬자파크 내에 전문의료․공업․농업 전문대학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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