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섬 원했지만 시국 탓에 서울로 발령

자살 시체와 뱀

졸업과 동시에 인사발령이 났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인사담당이 내무반에서 중대원을 모아놓고 각자 배속지를 불러주었다. 경찰국 단위 배정이었다. 나는 아예 서울 배속은 꿈도 꾸지 않았다. 수도권에 떨어지는 것만도 행운이었다. 경기도 내에는 인천이나 수원처럼 큰 도시가 있어 시내근무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기야 부산이 있는 경남이나 대구가 있는 경북이나 광주가 있는 전남이나 대전이 있는 충남 정도도 무난하다 싶었다. 

만약 제주도에 떨어진다 해도 불평할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아무데서나 생활대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 급했다. 제주도나 강원도 같은 오지에 떨어지면 낯선 정취를 느끼는 재미 또한 클 것이었다. 시골 지서에서 근무하게 되면 소재지마다 때깔 고운 처녀가 없지 않을 텐데 그런 순박한 처녀와 사랑도 하고 알뜰살림도 꾸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삭막한 도시보다 풋풋한 시골에서 대민봉사로 주민에게 인심을 얻으면 딸을 둔 부모들이 앞다투어 사위 삼으려고 대들 게 아닌가.

하지만 헛된 꿈이었다.

엄연히 미나가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맹수가 토끼를 앞에 놓고 발톱을 세우듯 미나는 내가 졸업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슬픈 먹이였다. 나는 미나에게 물어뜯기는 고기가 되느니 차라리 시골보다 더 외딴 섬 같은 곳으로 배속되기를 바랐다. 뱃길로 몇 시간 걸리는 그런 외진 섬에서 몇 년이고 죽치다 보면 도시에서 살기를 바라는 미나가 혹시 다른 먹이를 고를지 모를 일이었다. 휘황찬란한 도심에서 살아온 여자가 물소리만 들리는 외딴 섬에서, 그것도 늙은 시부모를 모시고 끝까지 배겨날 수 있겠는가.
 

 

 

섬으로 가자, 그것도 멀고먼 섬으로…….

하지만 호명 족족 거의가 서울로 배속되었다. 나도 서울경찰국으로 발령이 났다. 다른 중대원들도 거의 서울 배속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시국 덕택이었다. 앞으로 서울이 한일회담 등으로 시끄러워질 판이라 그곳 인력수급이 우선이었다.

나는 서울 발령이 기쁘기는커녕 되레 우울했다. 내무반 생활보다 더 지긋지긋한 미나와의 해후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위에 찌들면서 공부하고 훈련받은 형설의 결과가 기껏 알에서 깨어나 날아보지도 못하고 뱀한테 먹히는 새 꼴이 되고 말다니. 허탈했다.

첫 부임지는 영등포경찰서였다. 한강 이남에 하나뿐인 경찰서라 관할이 넓었다. 동쪽으로는 명수대(흑석동)파출소, 서쪽으로는 오류파출소, 남쪽으로는 시흥파출소까지 관할이었다. 그중에서 나는 상도동파출소로 근무 명령을 받았다.
 

상도동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주거지여서 시끄러운 사건이 드물었다. 한가로운 주택가 파출소에 묻혀 있으니 휴양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조용한 파출소에도 골치아픈 업무는 한 가지 있었다. 자살사건이었다.

숭실대학교 뒷산 기슭에는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십자가 아래 숲속에서 자살체가 자주 발견되었다. 자살체가 하도 많이 발견되어 어느 때는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이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정답게 느껴지는 시체도 있었다. 특히 처녀의 시체가 그러했다.

늦봄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학생들의 신고를 받고 산으로 올라갔다. 숲을 헤치며 산기슭을 기어오르자 십자가 밑에 하얀 원피스 차림의 아리따운 처녀가 누워 있었다. 그런데 팔뚝 굵기 만한 뱀이 아직 윤기 흐르는 아가씨의 허벅지 사이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언뜻 그 하얀 시체가 뱀으로 느껴졌다. 여자는 죽어서 뱀이 된다? 당장 침실로 기어들 긴 육체…….

나뭇가지를 꺾어 쉬쉬 뱀을 쫓아보았다. 하지만 뱀은 까딱하지 않고 혀를 날름거리며 꼬나보았다. 뱀의 눈빛이 점점 표독스러워 보였다. 당장 내게 달려들어 물 것만 같았다. 덜컥 겁이 났다.

일단 뒤로 물러선 나는 더 굵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시체의 사타구니께를 휘휘 저었다. 그제야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똬리를 풀기 시작했다. 똬리를 풀기 시작한 뱀은 하얀 허벅지를 기어 배와 가슴을 지나 어깨너머로 슬금슬금 미끄러져 갔다. 뱀이 숲속으로 꼬리를 감추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체 곁을 떠나는 것이 섭섭하다는 행보였다.

그런데 뱀이 사라지자 시체에서 스멀거리던 오후 햇살이 윤기를 잃어갔다. 금세 구름이 끼고 잔바람이 살랑거렸다. 시체의 색깔도 갑자기 우중충해졌다. 정갈하던 시체는 이제 구접스럽기만 했다. 영혼이 사라진 때문일까?

뱀이 아가씨의 영혼처럼 여겨졌다. 막상 떠나기 싫어 주저했을 가슴 아픈 이별, 그 아쉬운 이별을 나뭇가지로 재촉한 내 몰인정. 뱀을 쫓은 것이 미안하고 징그럽게 여긴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그 영혼이 아무 때고 나를 해코지할 것만 같아 오금이 저렸다.

나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포시 시체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았다. 혹시나 하는 수고였다. 하지만 이미 맥은 끊겨 있었다. 이번에는 머리맡에 뒹구는 핸드백을 집어들어 내용물을 검사했다. 종이쪽지에 눌러 쓴 유서에는 간단히 부모님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유서를 챙겨 호주머니에 넣고 발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방금 사라졌던 그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또 시체 곁으로 다가왔다. 뱀의 눈빛이 더욱 살벌했다. 마치 악을 쓸 때의 미나 눈빛과도 같았다. 소름이 끼쳤다. 미나가 뱀의 현신처럼 여겨졌다.

“너는 내 그늘을 벗어날 수 없어. 네가 산속으로 달아나면 산속으로, 땅속으로 달아나면 땅속까지 쫓아다닐 거야. 만약 나를 죽이면 뱀이 돼서라도 네게 달라붙을 거라고. 그러니 달아날 궁리는 아예 포기하고 나를 잘 구슬려달란 말야. 잘 구슬리는 방법이 뭔지 알지? 열심히 껴안고 사랑해 주는 것.”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부산에서 동거할 때였다. 그날 밤 미나는 이런 말도 했다.

“만약 네가 딴 년과 놀아나면 징그럽게 복수할 거라구. 어떻게 복수하는지 알아? 징그러운 구렁이가 되어 년놈의 몸뚱어리를 친친 감고 물어뜯을 거라구. 그러니 함부로 까불지 마.”

나를 닦달한 미나는 밖에 나가 잔뜩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그리고 혀꼬부라진 소리로 뱀에 대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녀가 일곱 살 때라고 했다. 바닷가 고향마을 너머에는 모래톱이 길게 누워 있고 모래톱을 따라 산자락이 드리워져 있었다. 산자락에는 해송과 잡목숲이 우거져 있고 모래톱으로 흘러내린 발치에는 해당화가 철따라 곱게 피곤 했다. 언니가 죽은 그 해는 꽃이 유난히 흐드러졌다. 초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인 늦봄 어느 날이었다. 열여섯 살 나이답지 않게 숙성한 언니는 동네 총각 하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날도 언니는 산자락 바위 틈에서 기다리는 총각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그 바위틈은 그들이 자주 만나던 곳이었다.
 

모래톱을 걷는 언니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피어났다. 연방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그녀는 발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서둘러 걷는 발길 앞에 탐스런 해당화 무리가 눈에 띄었다. 그 꽃잎이 자꾸 발길을 잡았다. 그녀는 꽃잎의 유혹에 끌려 걸음을 멈추고 몇 송이를 꺾었다. 가시에 손가락 끝이 찔렸지만 고운 꽃을 총각에게 바치고 싶은 정성이 그런 아픔을 잊게 했다. 꽃을 받아쥐고 기뻐할 총각의 얼굴만 떠오를 뿐이었다.

언니는 꺾은 꽃을 보기 좋게 사려쥐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당화 숲속을 빠져나와 잡목숲속으로 접어들 때였다. 발목에 섬뜩한 통증이 느껴졌다. 영락없이 가시에 찔리는 감촉이었다. 하지만 가시에 찔린 게 아니었다. 언뜻 파란 독사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금세 땅이 돌았다. 깊은 수면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총각이 언니를 업고 달려왔어요. 벌써 죽어 있었죠.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언니의 풀어진 몸뚱이와 총각의 질린 얼굴. 어머니는 기절하다시피했죠.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먼 산만 바라보던 아버지는 갑자기 뒤란으로 갔어요. 뒤란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손에는 낫이 들려 있었죠. 총각은 아버지의 눈치를 채고 후딱 도망쳤어요. 그때부터 아버지는 더 포악해졌고 어머니를 모질게 닦달했죠. 언니가 그렇게 된 것도 모두 어머니 탓으로 여긴 거죠. 어머니는 아버지가 세 번째 남자였거든요.”

악몽을 회상하는 미나의 눈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나는 살포시 손을 쥐어주었다. 모처럼 보여주는 깊은 정표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슬픔을 느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미나를 포근히 껴안아 주었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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