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남 바른미래당 군수 예비후보

<공통질문>

▲양평군의 미래상은… 양평은 우리나라 그 어느 도시보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제는 수려한 자연보다 양평사람이 더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재정자립도(20%)가 낮은 양평군민의 삶은 ‘양평의 삼성’으로 불리는 연간 예산 6000억원의 양평군 공무원 손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민 위에 군림하는 공무원 사회를 바꿔야 한다.

두 번째는 원주민과 이주민이 조화를 이루는 양평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구절벽이 시작된 한국에서 양평군은 인구가 늘고 있다. 이주민 비율도 절반에 육박한다.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을 풀고 화합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세 번째는 규제의 고통을 승화해 잘 사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농업, 문화, 예술, 관광, 교육 등이 새롭게 펼쳐지는 잘 사는 도시 양평은 꿈이 아니다. 수도권과 가깝고, 인적인프라가 풍성하고, 자연이 수려하고, 친환경농업인구가 많은 양평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꿈꿀 수 있는 도시다.

▲행정타운 구체적 공약… 먼저 행정타운 자체에 대해 유보적이다. 양평에서 행정타운을 만든다는 것은 나라로 치면 ‘수도’를 옮기는 것과 맞먹는다. 행정수도 세종시로의 이전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양평도 행정타운이란 계획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분명히 할 필요를 느낀다. 더구나 행정부의 분산배치를 원칙으로 하는 추세를 볼 때, 합당한 계획인지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양평군 청사의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인 점은 인정하지만 예산이 막대하고, 기간이 장구하며, 구 권역의 도심공동화현상이 불가피한 점 등 행정타운 이전 문제는 분명 재고되어야 한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행정 갑질과 혈세누수를 막고, 양평군 집행부의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양평공사 운영, 관피아현상, 롯데마트 인허가 로비에서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 위‧수탁업체에 대한 고압적 행정, 군민의 낮은 소득 등 드러나는 현상들이 대부분 구조적인 문제이며, 단체장의 문제이다. 군민의 소득이 늘지 않고, 일자리가 없는 지역적 난제들 역시 규제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양평공사 농산물 유통사업 해법… 양평공사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낳고, 군민의 원성도 높다. 게다가 근래 들어 사업 종류를 다변화하고, 몸집도 상당히 커졌다.

직원들의 감축에 대해선 반대한다. 일자리 창출은 시대적 과제로 관이 앞서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우선 전체적인 체질개선과 투명한 경영이 우선돼야 한다.

유통의 경우, 양평군 전체 농업 비전과 맥을 같이 해야 한다. 농업의 6차산업화, 내수시장을 포함한 시장의 다변화, 농업 제조업에 대한 행정지원과 제도적 뒷받침, 귀농귀촌문제, 유기농업의 전망 등 농업관련 제 문제를 통해 농업인 우선정책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지금처럼 농업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분야도 반드시 공사를 통해야 한다거나, 농업인이 하고 있던 일을 공사가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농업인들의 현장에서 비롯되는 요구를 기반해 공사가 맡을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

<개별질문>

▲경기도의원 4년 동안 어떤 일을 했나… 여러 일들을 했지만 개인적인 역량을 높인 것이 가장 큰 성과라 생각한다. 도정을 대하며 폭넓은 시각으로 양평을 보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의정활동에서 크게 기여한 부분은 없지만, 4년간 양평군 집행부가 요구했던 예산은 모두 받아냈다. 입법활동에서는 상수원 관리지역 지원조례를 제정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론조사에서 바른미래당과 후보자의 지지도 낮게 나온다. 해법은… 정당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본격적인 선거가 돌입되면 유권자들은 정당보다 누가 더 군수로 적합한가를 판단할 것이다.

진보, 보수를 넘어 양평의 현실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 빠른 시일 내 이분들의 지지를 모아 삼자구도를 형성하고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

▲지금의 군수를 만든 것은 결국 새누리당이었다. 그에 대한 책임있지 않은가… 김선교 군수가 처음에는 무소속으로, 이후 새누리당에 입당해 군수가 됐다. 어찌됐든 이전 당에서 공직자 출신 후보를 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김 군수는 노선을 달리해 결국 결별했다. 이를 현재까지 연장선상에 놓는 것은 조금 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김 군수가 그의 후계자를 내세워 권력을 세습하려는 부분이다. 이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경남건설 사태가 늘상 후보의 발목을 잡는다. 군수가 되면 이 사태와 관련된 특정인에게 특혜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큰형님이 하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 피해를 당한 분들이 있었다. 당시 여러 문제로 큰형님 명의로 회사를 만들 수 없어 나의 명의를 빌려줬는데, 내 명의로 발행한 당좌수표가 부도나면서 부정수표단속법위반 전과가 생겼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단 한 번도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고, 월급 차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분들과 인간적인 정도 쌓였다. 이 사건 당사자들 대부분이 현재 양평을 떠나셨거나 연로해 돌아가셨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부정청탁을 수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은 옆에서 지켜보는 지지자들과 군민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런 문제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결코 군수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김승남의 인생>

1957년 양평시장 중심상가 사거리 부근에서 태어났다. 6.25를 겪고도 남아있던 고풍스러운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남다른 노고 덕분에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5‧16군사정변 이후 의회가 강제 해산됐지만 도의원을 지냈던 아버지는 생계만큼이나 바깥일로 바쁘게 보내셨다.

군대 제대 후 돌아와 보니 가세가 기울어 한옥집도 남의 집이 돼 있었다. 대학 진학의 꿈을 접고 맏이인 큰형님의 사업을 돕기로 했다. 항상 아버님 같은 존재의 큰형님은 장애가 있었지만 남들보다 열정적이고, 선도적으로 사업을 펼쳤다. 그러다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연쇄적으로 부도가 터졌고, 나의 사업 또한 하루아침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는 ‘실패’와 정면으로 맞서며 보낸 시절이다. 태어나서 가장 많은 사색과 독서를 하며 지냈다. 하지만 너무도 강했던 충격은 쉽사리 마음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 때, 손을 잡아준 것이 바로 ‘정치’였다. 지금 생각해도 정치입문은 나에게는 ‘부활’이고 ‘기적’이었다.

그렇게 10년을 지역 당 사무국장을 하면서 정치를 배워나갔다. 그러다 2010년 양평군민은 부족한 나를 기초의원으로 선택해주셨다. 양평군의회 기초의원으로 당선돼 전‧후반기 의회 의장으로서 원내활동을 시작했다. 정치인으로서 평정심과 균형감각을 익힌 시기였다. 또한,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늘 군민의 시각을 잣대로 해야 풀린다는 것을 경험한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군민들은 저에게 도의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군민의 도움으로 광역의원이 돼 좀 더 넓고, 큰 시각으로 정치적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경기도의회 새누리당 부대표, 에결위원회 및 보건복지위, 기획재정위원회 등을 거치면서 배우고 경험했다. 또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경기도 제1연정위원장직은 여야를 아우르는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군대 이후 가려던 대학에도 입학해 학업에 최선을 다하였다.

쓰러지고,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갖는 유연함은 결코 유약함이 아니다. 눈물 나는 경험은 누구보다도 ‘공평한 사회’를 지향하게 했고, 돈보다는 명예가 우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핵심공약>

▲‘규제’ 속에 꽃 피는 ‘잘 사는 도시’ ▲원주민과 이주민이 ‘조화로운 도시’ ▲행정갑질 없는 ‘공정한 도시’라는 3가지 정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7대 공약이다.

1. 일터와 삶터, 놀이터와 배움터-하나 된 참 좋은 양평시대.

2. 참 좋은 행정-투명행정, 일 하는 공무원이 행복한 양평

3. 참 좋은 경제-일터와 삶터가 하나 되는 양평

4. 참 좋은 교통-주말에도 시원한 교통인프라 구축

5. 참 좋은 환경-중복규제 해결과 물이용부담금 현실화, 자연보전

6. 참 좋은 교육․문화․복지-사회적약자와 모든 세대를 위한 복지

7. 참 좋은 농촌-귀농귀촌, 농업인을 위한 행정인프라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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