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기 작가 인터뷰

남북정상회담에서 화제가 된 민정기의 ‘북한산’. 문재인 대통령은 이 그림의 기법을 묻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질문에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이라고 소개했다. 캔버스에 유채, 452.5×264.5㎝, 2007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과거와 현재 겹쳐지는 ‘원형’의 구도…

남북 평화와 번영 이루는 상징성 부합

“내 그림처럼 둥글둥글 평화 오기를”

 

“내 그림처럼 둥글둥글 타협을 통해 남과 북이 좋은 결과물을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달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1층 로비에 걸린 거대한 산 그림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반겼다. 민정기(69) 작가가 그린 500호 이상의 대작 ‘북한산’이다. 이 그림을 배경으로 남북 정상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판문점선언’에 서명한 뒤 서로를 끌어안았다.

풍경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민 작가는 지도 제작자에 가까울 정도로 직접 답사한 지형 등을 상세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것들을 함께 표현한다. 남북정상회담의 한 장면을 장식한 ‘북한산’은 2007년에 6개월 이상 걸려 완성한 것으로 이러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잘 표현한 대표적 작품이다.

예술 감상은 우리가 안 쓰던 정신의 근육을 움직여주는 일이라고 한다. 민 작가는 금강산 줄기의 북한산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하나의 거대한 원(圓)으로 그렸다”고 했다. 시점이 하나로 고정되는 서구 풍경화와 달리,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등 여러 시점에서 본 풍경을 한 화면에 결합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민정기의 북한산은 우리 산맥의 아름다움을 둥글게 모아놓았고, 11년 후 남과 북의 정상은 이 그림을 배경으로 한 역사적인 회담에서 둥글둥글 원만한 성취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기원하며 판문점선언을 이끌어냈다.

‘북한산’의 소장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이다. 때문에 민 작가도 회담 이틀 전에야 작품이 설치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그림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돼 정말 기쁘다. 작가로서 보람을 느끼고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양서면 부용리 작업실에서 만난 민정기 작가는 “TV를 통해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뒤로 보이는 그림은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삼청동에서 바라본 인왕(2018)’으로, 4일부터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중섭미술상 30년의 발자취-역대 수상작가’전(展)에서 볼 수 있다.

1972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민 작가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현실을 직시하고 발언한 미술운동 집단 ‘현실과 발언’을 창립한 민중미술의 주역이다. 1980년대 민중의 억압된 삶을 시대적 상황과 도시의 그늘진 모습으로 잔잔하게 기록했다. ‘세수’, ‘돼지’, ‘풍요의 거리’,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 등 그의 초기 작품들은 미학적 엄숙주의에 사로잡힌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민 작가는 1987년 서울에서 양평으로 들어와 서종면 서후리의 축사를 고쳐 나무로 지어 올린 화실에서 줄곧 작업을 해오다 30년 만에 양서면 부용리의 빛이 잘 들어오는 새 작업실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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