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시리의 어머니가 손때 묻어 반들반들한 나무 도장을 주머니에 넣고 시리를 데리고 길을 나섭니다. 경치 좋은 제주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풀숲과 바위에 가려진 동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날 늘 비밀이 많은 어머니 뒤를 따라가던 시리는 어머니와 함께 작은 구멍을 통해 동굴로 들어갑니다.
깊숙이 들어간 동굴 안 한 곳에서 어머니는 시리에게 4·3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때 이 동굴에 숨어 있던 시리의 진짜 부모도 결국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같이 숨어 있던 어머니는 남동생이 경찰이었기에 겨우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그날 경찰과 군인들이 그 동굴에 숨은 주민들을 모두 불러내 죽이고 돌아간 뒤 시리 어머니는 동생과 그곳으로 돌아와 살아 있는 시리를 발견합니다. 시리의 손에는 바로 그 나무 도장이 들려 있었기에 시리 가족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슬픈 역사를 담담하게 담은 그림책, 《나무 도장》을 읽으며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을 잠시나마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 용문산동네서점 ‘산책하는 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