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제8회 이장협의회 체육대회’

“아아, 예~ 오늘은 마을 청소의 날입니다. 한 분도 빠지면 안 되것습니다. 빠지면 가구당 만원씩 불참세를 걷을 예정이니 한 분도 빠짐없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웃 동네에 초상이 났는지, 위기 가정이 있는지, 노인회관에서 명절을 맞이해 단체 목욕을 가는지 다 알고 계시는 분, 그 이름은 ‘이장님’이다.

30년 동안 마을일을 맡은 80세가 넘은 이장이 있고, 단지 트럭이 있다는 이유로 이장을 하는 30대 젊은 이장도 있다. 여성 이장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31일 청운면레포츠공원 축구장에서 우리 마을 ‘홍반장’이자 마을지기, 이장님들의 체육대회가 열린 현장을 찾았다.

청운레포츠공원이 시끌시끌하다. 족구 예선전에 참가하는 용문‧서종면 이장들은 경기장으로 나오라는 재촉 방송이 쩌렁쩌렁 울리고, 지평면 부녀회는 부침개와 고기를 굽느라 분주하다. 개군‧옥천면은 여자경기인 승부차기 출전자들이 곧 진행될 경기에 앞서 연습이 한창이다. 공이 골망 옆으로 빠지자 “골키퍼가 없다고 생각하고 힘껏 차”하면서 훈수를 두는 남편들의 목청도 커졌다.

양평군이장협의회(회장 김효성)는 지난달 31일 청운레포츠공원에서 ‘제8회 양평군이장협의회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체육대회는 행정의 최일선에서 봉사하는 이장들의 사기 진작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2004년부터 시작해 격년제로 열리는 행사다. 12개 읍면 271개리 이장부부와 부녀회, 면사무소 직원 등 700여명이 모였다.

이날 체육대회는 9시 족구 예선을 시작으로 축하공연과 개회식, 군정발전유공자 표창, 대회사, 축사, 선수대표 선서에 이어 족구, 여자 승부차기, 400m계주 등 체육행사와 노래자랑, 경품추첨 순서로 진행됐다.

체육경기에 참여한 이장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기량을 뽐냈다. 이장들은 “바쁜 농사철이 시작되는 시기지만 이렇게 모여 같이 웃고, 뛰고, 즐기니 좋다”며 “오늘 서로 주고받은 기운이 마을과 지역 발전에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에 비해 수당 너무 적어

행사장 한켠 천막에서 이장들이 막걸리를 한잔씩 하고 있다. 이들은 행사가 너무 많다고 하소연을 한다. 한 이장은 지난해 그만두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마땅히 넘겨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이장 노릇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행정기관의 주민등록조사를 돕고, 민방위 교육 통지나 각종 행정사항 전달만 하면 됐지만, 요즘은 주민 욕구가 다양해져 역할이 그만큼 커졌다.

주민 대표로서 행정과 주민의 가교역할을 하는 이장은 크고 작은 마을 민원을 챙겨야 하는 창구다. 무능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수시로 군청이나 면사무소를 들락거리면서 공무원과 접촉해야 하고, 밤을 새워 마을의 공모 사업 신청서를 쓰기도 한다. 마을 안 갈등이나 분쟁을 조정하고, 어르신 수발을 드는 것도 당연히 이장 몫이다. 군에서 주최하는 행사에도 참여해야 한다. “군 행사에 이장들을 꼭 동원시키려고 하는데 다 따라다니다 보면 생업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도 이장이 받는 수당(활동비)은 한 달 20만원에 불과하다. 매달 2차례 열리는 회의 때 2만원씩 회의수당을 받고 명절에는 100%씩 보너스가 나오지만, 기본 경비인 교통비와 식사비에도 못 미친다. 지난 15년간 물가는 33% 상승하고 공무원 봉급은 29.5% 인상됐지만, 이장 수당은 그대로라며 현실적인 수당인상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다.

눈도장 찍는 예비후보자들

이날 행사장에서 가장 바빴던 사람들은 다가올 6.13 선거 예비후보들이었다. 일부 후보자들은 90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가 하면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명함을 돌리며 지지를 호소했다.

모 출마자는 “이처럼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행사에 빠질 수는 없지 않느냐”며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앞서 가급적 많은 유권자들을 만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장들은 “평소에는 얼굴도 잘 보이지 않던 정치인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행사장에 참석해 정책 없이 표만 호소하는 모습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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