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길호 씨, 귀농 생각하고 결심까지 12일밖에 안 걸려

“안정된 삶 버리고 흙 밟는 농부 되기로 결심”

자연에 가까운 환경서 건강한 닭 기르기로

도시의 높은 빌딩숲. 그 빌딩만큼 높기 만한 경쟁을 이겨내고 번듯한 회사의 간부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오던 한 도시인이 그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고향인 시골에서 흙을 밟고, 갈고, 다지는 농부가 되었다.
고향인 양동으로 귀농을 결정한 원길호 씨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세상에 공개한 귀농일기를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함은 첫째, 갈수록 힘들어져 가는 농촌사회에 새로운 대안농업을 제시하고, 둘째,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의 역할을 하고, 셋째, 한 인간의 새로운 도전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또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원길호 씨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그 첫 번째 일기장을 공개한다. <편집자 주>

〈콩세알 귀농일기〉 제1회

급작스럽게 찾아온 인생 제 2막에 대한 고민


나에게 올해는 불혹이라 불리는 마흔이 되는 해다. 
사실 나의 귀농 결정은 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평소에 복잡한 서울 생활에 싫증이 나 있었고, 언젠가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간혹 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귀농을 진지하게 고민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기업용 웹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개발자로서 업계에서 나름 인정받아 10년 정도 일에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여태까지 한 일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과연 내가 즐겁게 하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때부터 1년 넘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지금까지 나만을 위해 살아왔으니, 남은 절반의 인생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어떨까?’하는 것이었다.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라는 단체를 통해 해외 자원봉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준비를 하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7남매를 키우시느라 잠시도 쉬지 않고 혹사했던 몸이 드디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입원하고 계신 사이에 형제들이 모여서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를 했다. 급한 대로, 간병과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보자고 하고 자리를 파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해외로 가는 건 언젠가 할 수 있겠지만, 부모님 모시는 건 이때가 아니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귀농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 형 차를 타고 가던 길이었기에, 형에게 무심코 ‘내가 그냥 내려갈까?’ 하고 말했더니,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방목 유정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형도 기회가 되면 하려던 사업이란다. 그러면서 귀농하게 되면 물심양면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괜찮아 보였다. 긍정적으로 검토를 하기로 맘을 먹고 집에 왔다. 

한번 결심했으면 끝장을 보자.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인터넷을 통해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최우선으로 고민된 것이 ‘어떻게 키울 것인가’였다. 농사라고는 아버지 바쁘실 때 간혹 도와 드린 것이 전부인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으로 인터넷을 찾다 보니 ‘자연 농업’이란 생소한 단어와 함께 ‘자연 양계’라는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이게 뭐지? 하고 읽다 보니, ‘바로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다. 

‘자연’의 힘을 믿고 ‘자연’에 가깝게 환경을 조성하면 오히려 더 ‘건강’한 닭들이 건강한 알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내 기준에 맞춰 내 편하게 닭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닭의 기준에 맞춰 잠잘 곳이나 먹을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도 공감이 되었다.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말들을 하지만 먹을 것 가지고 장난을 치는 ‘잡것’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참 좋은 뜻을 가지고 힘쓰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많이 배워야 하고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경제성.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마리 수를 알아보니 대략 2000수 정도까지는 가능해 보이고, 산란율을 따져보고, 개당 납품가를 따져보니 계산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중요한 판로! 형은 파는 건 걱정 말라고 장담했지만 그래도 좀 걱정이 되었다. 병아리를 입식하고 5~6개월이면 초란을 낳으니, 그 전에 납품할 곳과 인터넷 판매 등 판로를 알아봐야 했다. 친환경 제품으로 인증 받게 되면 그쪽 유통망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고민된 부분이 초기 투자비용이었다. 설계 일을 하는 조카에게 부탁해서 2000수 정도 키울 수 있는 계사와 방목장에 대한 설계를 뽑아봤더니 철구조물 계사는 자재비만 3000만원이 넘어갔다. 하우스 계사로 해도, 2000만원을 넘을 듯해 보인다. 아무래도 실패에 대한 부담도 있고 하니 하우스 계사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어쨌든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귀농하자!!’ 처음 귀농을 생각하고 나서 결심하기 까지 12일 걸렸다.

원길호 씨의 ‘콩세알 귀농일기’ 블로그(http://3bean.tistory.com/)를 방문하시면 더욱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고향인 양동면 본가에서 아버지의 일을 도와 모내기를 하고 있는 원길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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