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석 사업가

양평시민의소리 신문사에 '미투신고센터'를 개설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분명히 가만가만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 속에는 양평지역 내 권한과 권력에 의한 성폭력과 추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투가 벌어지면 가해자로 의심되는 자보다 피해자가 누구인가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 마치 옆집에 불났는데 끄기는커녕 어디까지 타려나 구경하고 화재의 끝을 확인하려는 호기심 천국을 본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이웃의 아픔과 상처를 돌보기는커녕 왜 그 지경이 되었느냐고 타박하는 모습도 보인다. 가부장적 사회라거나 남성 우월적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뉴앙스와 어떤 행실이기에 표적이 되었는지 오로지 가해자, 즉 승자의 편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다. 감히 '삶이 전쟁터다'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절감하고 절망한다.

물론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신문사가 지방선거를 겨냥해 뭔가 영향력을 행사하려한다는 의심이다. 하지만 비록 그럴지라도 언론이 가진 사회고발과 경계의 의무라는 면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에 의한 질서로 사는 사회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법의 영역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는 사회라면 피해자들에게는 살만한 사회가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사회일 것이다.

미투는 힘에 의한 성추행과 성폭력을 고발하는 것이다. 확장하면 권력과 권한에 의한 강제와 강압 및 폭력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른바 가장 대표 적폐인 ‘갑질’을 고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리 져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이유는 ‘보다 더 안전하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도망가서 혼자서 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면 우리 사회, 양평이라는 지역공동체는 금방 무너질 것이다. 더구나 신체적으로 약하고 정서적으로도 강하지 않은 여성을 힘으로 겁박하거나 강제해 겁을 주고 가장 부끄러운 성까지 농락하는 짓을 버젓이 알고도 숨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이유, 어떤 명분도 가해자를 옹호할 수 없다.

그러나 피해자는 미투 폭로를 선뜻 결정할 수 없다. 우선 단죄가 아니어도 가슴속에 숨겨두고 아파해야 하는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응얼이는 누군가에게 드러내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단 호소하고 아프다고 고백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겠다.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은 능사도 아니며 우선해야 할 일도 아니다. 오로지 피해자를 보듬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우선이라면 숨죽이면서 아픈 피해자에게 한 줄기 빛의 통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또 통로가 있음으로 행여 음지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성추행, 성폭력과 갑질에 양심의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일은 공개돼 공평하게 처결돼야 하지만 구조적으로 쌓인 위계에 의한 갑질과 폭력은 단순히 적발해 처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적절하게 제어되는 공동체의 바른 사회를 향한 묵직한 걸음이 사전에 예방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에 고심 끝에 제안을 하는 것이다.

바라건 데 양평시민의소리 신문사에 ‘미투신고센타’가 개설되길 바란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돌보는 일은 당연할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양심의 바람이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사회다. 단죄보다는 예방되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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