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84

어딘가 아름다운 마을은 없을까

어딘가 아름다운 거리는 없을까

어딘가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힘은 없을까

1년 하고도 10개월에 이르는 여행길에서 언제나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되뇌던 이바라키 노리코의 시였다.

이제 여행에서 내린다. 공교롭게도 서종면에서의 자치위원회를 내려놓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훌훌 터는 기분은 언제나 말할 수 없이 자유롭다.

10년 전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Helena Norberg Hodge)의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를 읽고 참 많은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티베트인들이 살던 라다크에 서구문명이 유입되면서 전통적 문화와 가치관이 붕괴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린 책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 도시에 사는 언니는 여기보다 훨씬 편리한 생활을 한대요. 옷은 상점에서 돈만 주면 살 수 있고, 전화기가 있어서 집에서도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자동차가 있어서 금방 일을 본대요. 그런데 그렇게 빠르고 시간을 절약해주는 물건들이 있으면서도 집에 올 시간이 없으며 내가 언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해도 시간이 없데요”

옷을 만들어 입고, 몇 시간을 걸어 이웃동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산골의 동생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산업화된 도시에 사는 언니에게 가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산업화의 시대에 참 많은 것을 잃고 살아왔다. 오로지 먹고사는 일 앞에서는 다른 가치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먹고 사는 일이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각박해졌는가. 산업화는 물질적인 확장을 의미한다. 양적으로 소비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사회를 말한다. 그런데 왜 더 각박해졌는가. 왜 전통적 가치관들이 사라져야 하고, 물질 뒤에 숨어야 하는가. 무조건 돈 뒤에 숨어야 하는가.

객관적으로 각박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가. 우리의 욕심 때문이다. 물질이 늘어난 양보다 물질에 대한 우리 욕심의 양이 더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욕심이 커지자 욕심 사이의 비교와 경쟁도 더욱 커졌고, 불균형을 극대화시켰다. 무한 물질 경쟁이 계속되어 왔다. 물질과 금전 이외에는 어떤 가치관도 문화도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혼이 있는 한 정신은 죽지 않는다. 물질을 지배하는 정신은 죽지 않는다. 이제 사회는 다시 제자리를 조금씩 찾고 있다. 물질적인 화려함보다 정신적인 품격이 더 소중하다는 인간 정신의 본질이 되살아나고 있다. 공동체와 인간 중심 문화의 회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마을을 회복해내기 위해 오래 갈망하며 여행했다. 그리고 그 방향성과 사례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어느 날 교토의 고다이지(高台寺) 주변을 걷다가 떠들며 지나가는 한 무리의 중학생들을 보면서 언뜻 생각했었다. 이런 아름다운 공간에서 이런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성장한다면 저들의 정서는 얼마나 깊고 아름다워질까. 불법 주차된 자동차 사이를 비껴 차도를 들락거리며, 공터마다 무질서하게 산재된 공사 폐자재를 보며, 크기 경쟁만 하는 현란하고 추한 모습의 간판들로 시야를 채우며 학교를 다니는 우리 아이들과 비교된 것이다. 부럽고 울적했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은 그 아이의 인식과 감각을 결정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결코 겉멋이 아니다. 나의 두뇌의 세포를 자극한다. 그리고 현명하게 만들며, 선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공간에, 아름다운 마을에,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인간이 자라난다.

마을만들기 5년,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다닌 지 오래. 조금의 성과는 있다. 이제 마을 사람들도 믿어주고 함께 나선다. 내년부터는 서종면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대상으로 선정되어 한 여름 밤에 꾼 서종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오래 왔다. 그 동안 솜씨 없는 글을 실어 준 양평시민의소리 신문과, 읽어준 양평시민의소리 독자들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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